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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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군지를 설명하시려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때려 죽게 내버려둔 채 떠났다. 그 길을 지나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는 그를 피해 반대쪽으로 지나갔다. 그 길을 지나던 사마리아 사람은 달랐다. 그를 불쌍히 여겨 여관으로 데려가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도, 어쩌면 이렇듯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120쪽)의 이야기이다. (p. 130, 옮긴이의 글)'

빌 펄롱은 조금 더러운 석탄 배달을 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이다. 아내 아일린과 다섯 딸과 함께 사는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다. 다섯 딸아이 모두 제각각 재주도 있고 또 운도 좀 따라서 그리 가난하지 않게 펄롱은 나름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고된 하루를 끝내고 집에 들어와 잠자리에 들지만 펄롱은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다. 새벽까지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p. 44)'

마을에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웃들 그리고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펄롱의 마음은 불 펀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 배달 갔다가 창고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어쨌든 간에,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우리 딸들? 이 얘기가 우리 딸 들하고 무슨 상관이야?" 펄롱이 물었다.
"아무 상관 없지.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그게,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을 듣다 보니 잘 모르겠네."
"이런 생각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아일린이 말했다.
"생각할수록 울적해지기만 한다고." 아일린은 초조한 듯 잠옷의 자개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pp. 55, 56)'

아내 아일린은 펄롱이 수도원 일에 끼어들까 봐 걱정돼 딸아이들이 피해볼 수 있으니 잠자코 있으라고 주의를 준다. 침묵하고 안정을 택할 건지 여자아이 세라를 수도원에서 구해 낼 것인지 펄롱은 고민한다.

펄롱의 어머니는 열여섯 살부터 미시즈 윌슨의 집안일을 하며 지냈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펄롱을 낳았지만 미시즈 윌슨은 미혼모인 펄롱의 어머니를 내쫓지 않고 계속 일하도록 했을뿐더러 크리스마스가 되면 펄롱의 선물을 챙겨주며 따뜻하게 대해줬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p. 120)'

도움을 받고 자란 펄롱은 세라를 생각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펄롱은 세라를 수녀원에서 데리고 나와 집으로 향한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왜 강도를 만나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았을까. 그 누구보다 먼저 돕는 일에 나서서 실천해야 할 종교 지도자가 아닌가. 그 사람이 도와줘야 할 유대인인지 죽게 놔둬도 되는 적대적 관계의 사마리아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연세대학교 김학철 교수는 해석한다. 도와줘야 할 이웃도 구별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에게 도와줘야 할 이웃은 누구나였다. 차별하지 않았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 1996년까지 아일랜드에서 로마 가톨릭 수도회가 실제 운영한 곳이다. 학대, 감금, 강제 노역 등 법을 무시한 잔혹행위가 벌어졌다. 희생당한 여성과 아이들이 3만 명에 이른다. 그 사실을 소설 속 펄롱의 이웃처럼 그 당시 사람들은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왜 침묵했을까.

돕는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을 앞에 두고 본체만체할지 아니면 도와줘야 할지 갈등을 겪는다면, 그 이유가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은 것 때문이 아닐까? 차별 말이다. 도와주었다가 막달레나 세탁소가 있던 마을 사람들처럼 내가 당하게 될 불이익이 두려워 침묵했을까?

작가 안보윤은 그의 에세이 <외로우면 종말 (작가정신)>에서 일상의 무너짐은 사소한 것에서 온다고 말한다. 반대로 한 사람의 일상이 바로 서는 것도 사소함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엊그제 지인이 추천해서 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서 허무주의 상징하는 에브리씽 베이글에 맞서 저항하는 다정함의 상징으로...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인형 눈알, 구글리 아이를 내세우더라.

차별이든 침묵이든 그 사소하다 여길 만한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은 우리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 것이다. 왜? 우리는 동물이 아니라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p.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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