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영화 <더 글로리>를 보고는 어느덧 이십 대 후반이 된 두 아이에게 중고등학생 시절에 학폭 경험이 있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물었어야 할 질문을 이제서야... 하는 후회와 함께 미안한 마음이 적지 않았다. 아들아이는 뭐 딱히? (그냥 귀찮아서 말을 안 하는 것일 수도...) 하는 표정이었다. 딸아이는 학폭은 없었고 친한 친구였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무리 지어 따돌림 했던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딸아이는 쿨하게 그러든지 말든지 다른 아이와 놀았고 그 아이도 떠나면 또 다른 아이와... 이런 식으로 해결한 모양이었다 (딸아이 성격이 그렇다). 다행스럽기도 하고 두 아이가 참 고마웠다.<어느 날 책상이 뒤집혀 있었다>는 일본의 인기 코미디언인 세이야의 자전적 소설이다. 학창 시절에 겪었던 따돌림과 폭력에 맞선 이야기다. '흰 와이셔츠에 배어든 카레 국물처럼, 열여섯 살 아이들의 새하얀 마음에 들러붙은 '이상한 아이'라는 인상은 아무리 씻어내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으로 남았다. 학교라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따돌림은 이런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p. 16)'고등학교 입학 첫날, 이시카와의 실수 아닌 실수 한마디로 따돌림이 시작됐다. 다음날 교실에 들어서니 책상이 뒤집혀 있었다. 얻어맞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괴롭힘을 당해 수치스럽고 머리카락도 빠졌지만 나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란 생각을 하며 견디며 지냈다. 이시카와는 어른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고,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끼어들 경우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신자 낙인이 찍힐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극제 행사 소식을 접한 이시카와는 자신의 콩트 창작 능력을 발휘해 따돌림 반전의 기회로 삼기로 한다.'그건 괴로운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고독과 외로움, 누군가가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즉 약함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남을 괴롭히는 사람은 자신의 약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이를 업신여기며 안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단 괴롭힘 문제는 복잡한 것이며,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p. 137)'이시카와는 콩트를 준비하면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괴롭혀온 구로카와의 사정을 듣게 되면서 그를 불쌍히 여긴다. 문극제 당일까지 구로카와의 방해가 있었지만 지혜롭게 대처해 마침내 최우수상을 받으며 기나긴 따돌림이란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난다.'"집단 괴롭힘은 당하는 쪽에도 원인이 있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압도적으로 괴롭히는 쪽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 137)'영화 <더 글로리>의 김은숙 작가가 들어보니,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장 많이 듣고 상처받았던 말이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라는 말이었단다. 그래서 '어, 나는 잘못 없어'라는 말을 사명처럼 이해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우리 사회는 항상 학폭 사건을 대할 때마다 당한 아이에게 주목해왔다. 그러다 보니 가해자는 어느새 우리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러고는 피해자에게 한다는 말이 '쟤도 문제가 있었네...'자칫 따돌림에 맞서 당당하게 극복한 작가 세이야의 이야기에 박수를 보내느라 '그래 세이아처럼 했으면 괜찮았을 일을...'라며 또 눈길을 피해자에게 돌릴까 걱정된다. 먼저 가해자에게 향했어야 하는 눈길인데도 말이다. <더 글로리>를 본 아내는 그때도 그랬고 지금 학폭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항상 열변을 토한다. 당한 아이를 생각하면 아무리 학폭 가해자가 어리더라도 용서해 주면 안 된다고.간단치 않다. 하지만 확실한 건 가해자를 주목해야만 학폭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야 학폭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가해자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 다가가 품어줘도 늦지 않다. 자꾸만 피해자에게 '그때 좀 더 강했어야지'라는 닦달은 그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