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개그맨이란 말을 썼다고 알려진, 지난해 가을 우리 곁을 떠난 전유성 씨의 일화가 생각난다. 인사치레로 하는 '형~ 언제 밥 한 번 먹어요.'라는 말을 하면, 날짜 잡자고 덤벼들곤 했다고 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고 한 말을 상대방 의도대로 오역誤譯하며 '밥 한 번 먹지 않는' 세태를 꼬집으며 정역定譯으로 대들은 셈이다. 지금까지 번역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번역하며 살아갈 기세인 황석희 번역가가 일상에서 겪은 오역 이야기를 에세이 <오역하는 말들>에 담았다. 전유성 씨의 개그 같은 삶처럼 재밌기도 하고 페이소스도 묻어난다. 지난해 가을 파트리크 쥐스킨트에 빠진 적이 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 <깊이에의 강요>가 있는데 제목이 영 마음에 걸렸다. '5월에의 초대'처럼 그럴듯해 많이 쓰지만 <우리말 바로 쓰기>를 쓴 이오덕 선생에 따르면 '~에의'는 일본말 'への'를 직역한 병신말이다. '5월로 초대합니다'라고 하면 될 걸 굳이 어색한 말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깊이에의 강요'라는 제목이 꺼림직해 우리말로 바꿔보려고 했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원제가 궁금했다.'Der Zwang zur Tiefe'''깊이(Tiefe)를 향한(zur) 강요(Zwang)' 마지막에 비평가가 했던 말을 '강요' 대신 '강박'이라는 의미를 선택해 직관적으로 바꿔 본다. (...) '강요'와 '강박', 두 단어 중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렇게 뉘앙스가 다르다. 그게 뭐 그리 다르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번역가의 입장에서 두 문장은 뉘앙스만이 아니라 아예 의미가 다르다. (...) 다만 내가 번역한다면 '깊이에의 강요'가 아니라 '깊이를 향한 강박'으로 할 거라는 거지. 짧은 내 식견엔 그편이 독자의 오독을 막기에 더 좋은 길이다. (pp. 81, 82)''깊이를 향한 강박', '~에의'가 빠지고 나니 얼마나 맘에 들던지 황석희 번역가가 너무 고마웠다. 아무 생각 없이 일본말을 우리말로 정역하다 보니 우리말이 오염됐다.아내와 눈물 콧물 빼며 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대사다.'엄마 애순은 궁상맞은 생활을 타박하는 딸 금명에게 이렇게 말한다."엄마처럼 살지 마. 근데 엄마는 엄마대로 행복했어. 엄마 인생도 나름 쨍쨍했어. 그림 같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다고." (p. 167)'자식들은 부모님 삶은 불행하다고 섣불리 단정 짓곤 하는데 황석희 번역가는 이를 제멋대로 해석한 오역이라고 지적한다. 부모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석희 번역가가 고생하며 사신 어머니께 다시 태어나도 아버지와 결혼할 거냐고 물었단다. 절대 안 한다는 어머니의 대답이 서운해 속마음을 담아 노골적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나랑 모자 사이로 못 만나는데? 그래도 괜찮아?"엄마는 잠시 뭔가 말을 고르는 것처럼 뜸을 들이다 미안한 듯 입을 뗐다."너는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엄마한테서 태어나야지. 내가 너무 못해 줬어."말문이 막혔다. 농담이 나오질 않았다. (p. 199)'황석희 번역가는 이 말을 번역하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의 말이 너무 뻔히 읽혀서 번역하는 것조차 미안했기 때문이다. 영화나 뮤지컬을 번역하는 황석희 번역가처럼 우리도 일상에서 무수한 말들은 각자의 언어로 번역하면 살아간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아내와 대화에서 가장 많이 서로 주고받는 말이다. <폭싹 속았수다>의 대사와 마찬가지로 상대의 감정이나 상황을 파악하지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채 내 멋대로 해석한 오역에서 빚어진 말이다. '깊이에의 강요'처럼 어떤 오역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하다. 또 때론 황석희 번역가의 어머니 말처럼 굳이 번역하지 않는 것이 옳을 때도 있다. 분개해야 할 때도 있다. 적대시하고 불신에 사로잡혀 악의를 가진 오역을 만났을 때다. 부득이 오역이 필요한 때도 있다. 상대방을 보호하고 갈등을 피하고자 할 때 선의를 가진 오역이 그것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런 오역은 절대적이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라며 아내에게 따질 게 아니라 내 나름 오역하면 된다. 음~ 무슨 오역이 적당할까? 어렵다. 세상에서 아내가 하는 말을 번역하는 게 제일 어렵다. '지금 뭐 할 건데?', 빤히 쳐다볼 때... '뭐 잊어버린 거 없어?', '그럴 줄 알았어', '할 말 없어?'... 어떤 대답이 이어져야 할까. 대답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쳐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러고는 잘 때 번뜩 생각난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대신 '내가 당신을 이해하는 게 서툴지? 난 왜 그게 늘지 않을까?' ??? 뭥미? 실패다. 오역 참 어렵다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