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부분 '빠른 생각'으로 살아간다. 휴리스틱 Heuristic, 불확실하거나 여유가 없을 때 꼼꼼하게 따지기보다는 이제까지 경험이나 직관으로 어림짐작한다. 생존을 위해 휴리스틱이 효율적이라는 걸 우리 뇌가 학습한 결과다.게다가 뇌는 게으르다. 될 수 있는데도 일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느린 생각'을 계속하면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빠른 생각으로 주장한 것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느린 생각으로 빠른 생각을 정당화할 궁리를 한다. 사상 최초로 심리학자인데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커너먼이 그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펼친 내용이다.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전제를 완전히 뒤집고 '인간은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커너먼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을 공부한 폴커 키츠와 마누엘 투쉬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우리가 왜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선택과 감정, 인간관계가 무의식적인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지 40가지 심리코드로 설명하는 책이다.퇴근하고 잠실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할 때마다 '스티커 하나만 붙여주시겠어요?'라는 부탁을 하며 접근하는 청년을 만나곤 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심리코드가 바로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작은 부탁을 하는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 Foot-in-the-door technique'이다. 스티커를 붙이는 순간 경계를 풀며 마음의 문을 열게 돼 더 큰 부탁까지 들어주게 된다. 얼마 전 전 정부의 국무총리 내란 혐의 재판에서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왜 그런 중형을 선고했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여러 죄목 가운데 하나로 국무총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무, 즉 비상계엄 선포를 적극적으로 저지했어야 할 '작위作爲' 행위를 하지 않은 '부작위不作爲'의 죄를 물었다. '뇌는 대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도덕적으로 더 낫다는 사실을 '안다.' 게다가 게으른 탓에 이런 앎을 모든 경우에 적용하는 일반화를 저지른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더 편안하게 여긴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자기 자신이 괴로울지라도 별다른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 pp. 124, 125 부작위 편향)'12.3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작위 하며 오히려 내란 세력에 가담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이 재판장의 판단이었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꽤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하지만 대니얼 커너먼이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이 실험을 바탕으로 지적한 대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심리 코드에 따라 행동을 결정짓는다. 우리는 우리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느린 생각'보다 '빠른 생각'으로 살아가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하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타인의 말과 행동 뒤에 숨은 마음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선택을 잘못해 생기는 손해도 줄일 수 있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맡은 바 직무를 작위함으로서 불의에 맞서 정의를 실현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