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폐들 그리고 비트코인
홍익희 지음 / 책과삶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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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농부가 재산을 팔고 별보배고둥 껍데기를 한 자루 받아서 지방으로 여행을 갔다고 하자. 그곳 사람들이 별보배고둥 껍데기를 받고 쌀과 집과 밭을 팔 거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여행이다. 화폐가 인간이 고안한 것 중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 신뢰 시스템임을 설명하려고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소개한 일화다.

덧붙여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 화폐라는 것도 증명한다. 서로의 신앙에 동의할 수 없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일지라도 돈에 대한 믿음은 동의한다. 종교는 무언가를 믿으라고 하는 반면에, 화폐는 다른 사람들이 믿는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화폐는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까지도 효율적으로 협력하게 만든다. 화폐는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KOTRA에서 32년간 일했고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한 홍익희 저자는 "그 믿음은 앞으로도 계속 돈이 될 수 있을까?" (p. 10, 프롤로그)'라는 물음으로 이 책 <세상을 바꾼 화폐들 그리고 비트코인>을 시작한다.

기축통화로 작동하던 달러가 점점 신뢰를 잃어감에 따라 그 시대가 저물어 간다. 그 결과, 달러를 대체할지도 모를 비트코인이란 기술이 주는 신뢰는 과연 믿어도 되는 걸까, 이런 의문이 저자가 던진 물음을 성립하게 한다.

'화폐의 역사는 언제나 신뢰의 주체가 바뀌는 과정이었다. 왕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중앙은행으로, 그리고 이제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 비트코인은 화폐의 본질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묻는다. "우리가 믿는 것은 진짜 내실을 갖춘 가치인가, 아니면 권력이 만든 숫자인가?" (p. 9)'

미국의 금 보유량이 세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금본위제를 폐지했고 미국은 달러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자산가에게는 부를 안겨주었지만 노동자들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화폐는 신뢰를 잃었고 불평등의 도구가 돼버렸다.

저항의 산물로 암호화페가 등장했다. 은행 대신 기술이, 사람 대신 프로토콜을 믿게 됐다.
'비트코인은 그래서 단순한 디지털 기술이 아니다. 신뢰가 떨어진 시대에 다시 신뢰를 세우려는 시도, 그것이 비트코인이었고, 화폐를 인플레이션의 도구가 아닌 '신뢰의 프로토콜'로 되돌려 놓으려는 최초의 실험이었다. (p. 72)'


돈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도구가 아니었다. 사회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뿐만 아니라 돈은 인간의 욕망과 신념, 권력을 지배해왔다.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다음 소비를 부를 뿐이다.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 속에 그 욕망의 거래가 숨어있다. 욕망을 담보한 부채가 당장은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 같지만 그 자유가 곧 예속임을 목격한다.

돈은 권력과 전쟁의 승패도 갈라 왔다. 로마는 금화와 은화로 문명을 지탱했다. 네로 황제가 은화에 구리를 섞으면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뢰를 잃은 로마는 통화 시장 붕괴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화폐가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라 신뢰의 제도임을 역사도 증명한 셈이다.


자, 이제 기술이 신뢰를 대체되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까지 신뢰의 중심에 인간이 있었다. 사람을 믿었고 국가와 법이 책임지고 보증했다. 그렇지만 블록체인과 AI가 결합함으로써 '신뢰의 권한'이 인간에서 기술로 넘어가게 됐다.

'"누구를 믿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자동으로 결정되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는 시대가 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문명적 전환, 곧 '인간 중심 질서의 약화'를 의미한다. (p. 330)'

저자는 화폐의 변천에 따라 신뢰의 역사를 탐구한 끝에 마지막 질문에 던진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p. 361)'

기술은 발전할 것이다. 언젠가 '신뢰의 권한'을 다른 발전된 기술로 넘길지도 모른다. 또 언젠가 달러가 신뢰를 잃었듯이 기술도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신뢰와 믿음 위에 쌓아온 우리들의 사회적 약속은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돈의 가치, 교환의 가치가 기술이 아니라 인간 사이 신뢰에서 유지되 왔기 때문이다.

화폐가 어떤 형태로 변하든 화폐는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된다. 신뢰라는 토대 위에 화폐가 있어야만 낯선 곳으로 여행할 수 있고, 종교와 인종이 다르더라도 사회경제에 효율적 협력이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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