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왕국 - 식물은 어떻게 문명과 권력을 설계했는가
데이비드 스펜서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식물에 귀 기울여본 적이 있는가. 우리 집 베란다에도 식물 여럿이 자라고 있지만 바라만 본다. 가끔 중얼거리는 말을 건네긴 한다. 하지만 식물이 알아들을 거란 생각으로 말하진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식물이 어떤 이야기를 내게 전해줄지 궁금하지도 않고 귀 기울인 적도 없다.

'식물학에는 식물을 동물보다 열등한 생물로 보는 이런 집단적 열등 콤플렉스를 지칭하는 '식물 맹시'라는 용어까지 있다. (p. 248)'

언제나 가만히 제자리에 있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이 '무슨 생각이 있겠어'라는 '식물맹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물과 인간의 진화 역사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면?' <뿌리 왕국>의 저자인 독일의 식물생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데이비드 스펜서가 우리에게 내놓은 질문이다.

게다가 곤경에 처한 우리 인간에게 그 어느 때보다 식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식량, 에너지, 주거를 위해서는 물론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로서, 팀 동료로서 그리고 멸종과 기후 위기, 제한된 공간 때문에 엄청난 독창성이 요구되는 어려운 미래에 맞서 싸울 동맹자로서 (p. 140)' 식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웅장한 진화를 아직 겪지 않은 태초의 식물은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아주 작디작은 생명체였다. (p. 19)' 이랬던 식물이 어떤 기술을 습득해 현재 지구를 만들어놓았을까. 동물과 인간이 지구에 등장했을 때는 이미 식물이 지구를 소화하기 쉽게 씹어놓고, 가공하고, 다듬어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침대를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인간은 먹거리를 외부에 의존했지만 식물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공생을 택하기도 했다. 한자리에 뿌리내리고 살려고 동물을 지배하는 법도 익혔고, 특정한 것을 기억해 내는 능력을 갖췄으며, 매년 작은 죽음과 작별이라는 재생을 거듭했다.

'얼마 전에 나는 몬테네그로의 바르(Bar) 근처에서 '스타라 마슬리나'라는 아주 오래된 올리브나무를 보았다. (...) 적어도 2,2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가장 멋지게도 이 나무는 여전히 올리브를 생산한다! (p. 48)'

몸의 90퍼센트를 잃어도 식물은 살아남는다. 거의 죽었다가 부활하는 셈이다. 식물은 인간의 질병을 고쳐주기도 하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능력도 있다. 2000년 전 유대 지방의 누구와 비슷하지 않은가? 신을 숭배할지언정 식물의 지성과 진화적 성공을 인정하지 않는 건, 순전히 인간이 가진 오만함 때문이다.

인간이 들을 수 없을 뿐 식물은 '화학 풍경' 속에서 끊임없이 수다 떨며 식물의 성장, 동물의 행동, 토양의 변화 등 전제 생태계 운명에 영향을 끼친다. 다양한 모양과 색깔로 수분을 위해 곤충과 새를 불러들이고, 씨앗을 퍼뜨리려고 잘 보이는 색깔의 열매로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도 끌어들인다.

식물 스스로 보호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광합성으로 만들 수 없는 독소, 효소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산불을 내기도 한다.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곤충을 끌어들여 활용하기까지 한다. 초능력에 가깝다.

'"(개미가) 악마의 정원을 만드는 것은 보금자리 구축의 한 예다. 개미는 다른 모든 식물을 죽여, 둥지를 틀 히수타 줄기를 더 많이 확보한다." 프레드릭손은 숲의 현재 성장률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악령의 정원은 800살이 넘었고, 300만 마리의 일개미와 1만 5,000마리의 여왕개미로 구성된 단일 왕국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p. 161)'

식물 군집을 이루어 다양성을 유지한다. 독립적이면서 공동체를 이루면 강해진다는 사실을 식물은 터득했다. 단일 농작으로 생태계 다양성을 무시하는 인간보다 지혜롭다.


땅속에는 인간의 규칙과 다른 자연 규칙이 존재한다. 식물과 다른 구조를 가진 미생물과 논의하고 예측하고 계산할뿐더러, 어떤 것이 유용하고 방해가 되는지도 구분한다. 다른 손을 빌리기도 하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상품을 교환하기도 한다. 모든 숲과 밭, 심지어 베란다의 화분 속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식물은 인지능력을 가진 복잡한 생물이다.

인간과 다른 구조를 가진 식물, 식물이 그러했듯이 이제는 인간이 식물과 공진화해야 할 때다. 인간만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서로 다른 말과 규칙으로 생긴 오해를 과학의 힘으로 이해하며 풀고 상대방의 말과 규칙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다.

산책할 때 주변에 보이는 식물을 이제 상호 존중의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식물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정보로 식물이 가진 초능력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자연보호라는 용어를 항상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인간 보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태계 서비스라는 쿠션의자에 함께 앉아서, 자신의 엉덩이를 걱정한다. 쿠션을 더욱 푹신하게 하고, 수선하고, 소중히 관리하면, 우리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꺼이 제공해 주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연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p. 2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