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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서버
로버트 란자.낸시 크레스 지음, 배효진 옮김 / 리프 / 2025년 12월
평점 :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는 신이 친구 엔키두를 죽이는 걸 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길가메시는 여행을 다니면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중 우여곡절 속에 먹으면 영생에 이르는 불로초를 얻는다. 하지만 방심한 사이에 뱀이 불로초를 가져가 버려 영생의 꿈은 사라지고 만다. 신은 인간에게 경고한다. 신만이 누릴 수 있는 영생을 원한다고? 그런 허황된 꿈은 버려라.
생명과학자 로버트 란자가 SF 문학의 거장 낸시 크레스가 함께 쓴 소설 <옵서버>는 양자 역학과 다중 우주론으로 영생이 가능할지도 모르는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여동생 엘렌과 힘겹게 살아가는 신경외과 의사 캐롤라인 소암스 왓킨스 (캐로), 병원 내 성추행 피해를 신고했다가 오히려 일자리를 잃게 되는 처지가 된다. 그때 전혀 알고 지낸 적 없는 노벨상 수상자인 큰할아버지 새뮤얼 왓킨스로부터 자신의 비밀 연구 프로젝트에 함께하자는 제안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이 연구 프로젝트의 목적은 죽음을 피하는 거죠? 단순히 물리학 실험이나 뇌 지도화 연구를 위해 다중 우주의 다른 분기에 들어가려는 게 아니잖아요. 박사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그 다른 다중 우주에서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박사님이 존재하는 분기를 '창조'하려는 것 아닌가요?" (p. 167)'
캐로가 해야 할 일은 뇌가 정보 처리하는 알고리즘을 변경하는 첨단 칩을 뇌에 심는 수술이다. 칩을 이식받은 사람들은 각자 의식으로 만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현실과 다른 현실을 만나 위로를 얻는다. 캐로는 마침내 아이를 잃고 괴로움 속에 있는 동생 엘렌에게도 칩을 이식하는 수술을 하기로 맘먹는다.
그리고 사고로 죽음의 문턱에 선 캐로마저 칩을 이식받고 죽은 다음, 자신의 의식으로 창조한 세계를 마침내 만난다. 새뮤얼 왓킨스가 죽은 다음 메시지를 보내온 그 새로운 세계, 과연 그 세계는 길가메시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죽음도 없고, 삶마저도 두렵지 않는 그런 세계일까?
'그가 창안한 '관찰자의 우위성'이라는 이론은 (...) 그의 생물 중심 이론의 핵심은 물질과 진화가 의식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다. 의식이 물질과 시간을 만들어냈다. 그 무엇도, 즉 지구도, 은하도, 부엌도, 심지어 우리 뇌조차도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 내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p. 446)'
이 소설의 공동 저자 로버트 란자는 생물중심주의 Biocentrism을 주장한다. '현실은 관찰에 의해 형성된다'는 새로운 세계관이다. 시간도 공간도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 낸 도구라는 주장이다.
이 이론에 두 입자가 얽혀 있다면, 하나를 측정할 때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른 입자가 영향을 받는다는 '얽힘 현상'을 특징으로 한 '양자 역학'과 행동한 사람의 관찰을 포함해 어떤 행동이 관찰될 때마다 우주가 분기된다는 '다중 우주론'이 더해질 때, 오랜 시간 인간이 꿈꿔왔던 영원한 삶이 현실이 되는 상상이 가능해진다. 의식이 모든 걸 창조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자신의 의식이 창조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의 선택으로 내 삶을 결정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의식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현실을 무수히 바꾸며 살아간다.
실패로 절망스러운 현실에 주저앉아 있다가 일어서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가 빠져나오기도 하고, 부모 품에 의존하다가 독립하기도 하고, 모험의 세계에 뛰어들기도 하고.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다가 깨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혹시 나비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비가 내 꿈을 꾼 건지도...
올해가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이라고 한다. 100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약 300년 전에 장자는 양자역학 개념을 과학으로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의식으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자신의 의식으로 창조한 인간의 세계와 나비의 세계를 넘나들었겠지. 아니... 장자뿐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는 이미 자신의 의식이 창조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덧,
양자역학을 알고 싶다면 그 어려운 개념을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나가는 이 소설 읽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