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극장 - 시대를 읽는 정치 철학 드라마
고명섭 지음 / 사계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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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은 부정 선거가 확실하다."
시위대 속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분이 한 말이다. 인터뷰어가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남들이 다 그러던데?"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은 아리스테이데스의 도편추방 일화를 전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한 사람이 아리스테이데스에게 도자기 조각을 내밀며 이름을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적어 넣을 이름을 묻자 '아리스테이데스'라고 말했다.

'아리스테이데스가 도자기 조각에 자기 이름을 적어 넣고는 물었다.
"아리스테이데스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했습니까?'"
시골 사람이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그게 아니고, 만나는 사람마다 아리스테이데스가 공정하다고들 하니까 지겨워서 그럽니다." (p. 229)'


<카이로스 극장>은 한겨레신문 기자를 지냈던 고명섭 철학 저술가가 철학과 역사를 렌즈로 삼아 카이로스의 눈으로 우리 시대가 써낸 정치 드라마의 격류를 조망한 책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해인 2022년 3월부터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킨 그 이듬해 2025년 9월까지 신문과 잡지에 쓴 글들을 모았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는 윤석열이 '사익을 공익으로 무능을 유능으로 포장'한 정치꾼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아무 쓸모 없는 자가 국가를 이끌 적임자라고 속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기만'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플라톤의 묘사처럼 '이들은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그런 자들이 할 법한 방식으로 항해 (p. 59)'를 한 집권 세력이었다. 플라톤은 묻는다. 이런 자들은 조타수가 아니라 '하늘을 보며 별점이나 치는 수다쟁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런 사이비 조타수가 키를 잡으면 배가 난파할 수 있다는 경고도 플라톤은 덧붙였다. 플라톤의 경고대로 결국 윤석열 정권은 계엄이라는 내란을 일으켜 스스로 침몰했다.


'이때 스펜서에게 '가장 잘 적응한 자'는 '가장 우월한 자'를 의미했다. 그러므로 적자생존이라는 스펜서 원리는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한다는 우승열패,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이로 삼는다는 약육강식을 내장한다. (p. 156)'

다윈이 생각한 적자,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합자 자'라는 의미와 거리가 먼 스펜서의 '약육강식'이란 말은 강자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위세를 떨친다. 상대편이 아니라 힘없는 쪽에 잘못이 있다는 논리는 마침내 2023년 윤석열의 3.1절 기념사에 침략당한 우리가 문제였다는 제국주의 논리로 등장했다.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을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 제104주년 3.1절 윤석열 대통령 기념사 중에서'

'나의 기억은 나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기억이 무수한 '나'를 관통해 전체를 이루면 집단의 기억이 된다. 그 집단의 기억이 역사다. (p. 202)'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역사인식이 달라진다. 제국주의 지배에 맞서 싸운 항일독립군이 아닌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특설대를 기억하는 자들의 논리가 순국선열을 기억하자는 3.1절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를 바꿔치기하면서까지 일제강점기에 했던 부역자 노릇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런 집권 세력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윤리의식마저 저열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12.3 내란 1년을 하루 앞둔 국무회의에서 내란에 대한 결처한 진상조사를 거듭 강조하며 쿠데타 등 국가폭력을 저지른 자는 '나치 전범을 처리하듯'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이다. 일제 부역자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반윤리적이고 반상식적인 세력이 남아 어떤 반성도 없이 지금도 역사의식이 바로 서지 못하도록 훼방놓고 있지 않은가.


'아리스테이데스 추방에 찬성한 그 시골 사람은 문자적 문맹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문맹이기도 했다. 고대 아테네 역사가 보여주듯이 민주주의는 깨지기 쉬운 그릇과 같다. (p. 230)'

윤석열이 대통령 직무를 수행했던 3년 동안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쉽게 저급한 선동정치의 먹이가 되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민주주의 체제는 내부에 자기 파괴적 요소도 품고 있어 시민들이 정치적 문맹 상태에 있을 때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탈선한다는 역사적 교훈도 체험했다.

'크로노스가 타임(time)이라면, 카이로스는 타이밍(timing)이다. 역사의 뜻에 비추어볼 때 반드시 잡아야 하고 반드시 뚫고 나가야 하는 순간이 카이로스의 순간이다. (p. 20)'

지금이 시민들이 정치 문해력을 갖춰야 할 카이로스의 순간이다. 더 이상 정치인의 거짓 선동에 속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기만과 속임수로 깨지기 쉬운 민주주의 체계를 무너뜨리려는 짓을 막으려면 시민 스스로 거진과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남들이 다 그러던데?"
판단을 남에게 맡기는 이런 말을 할 게 아니라, 가짜와 진짜를 가르는 판단 능력을 내가 갖춰야 정치가 정치답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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