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절의 농담 - 담도암 4기, 시한부 6개월을 완치로 바꾼 기적의 시간들
박주혜 지음 / 브로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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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도 어김없이 지난 12월부터 시작된 줌 독서토론에서 주혜 작가를 만났다. 펌을 한 내 모습을 보며 머리 스타일이 멋있다는 말을 건넸다. 8월 말 주혜 작가의 북토크에서 멋진 모습으로 축하하려고 미리 준비한 거라며 독서토록 멤버들과 함께 농담을 주고받았다.

지난해 7월 암 진단 직후부터 1년여 동안 진행된 내 평어 책 친구 주혜의 운명과 한판 줄다리기한 스토리는 농담을 주고받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그동안 마음 졸이며 기도밖에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 '나 완치됐어~'라는 주혜 입에서 나온 마법 같은 말은 기적이 일어났음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우리도 그 암울했던 시간에서 비로소 풀려났다.


지난해 7월 12일 주혜 작가는 인별을 통해 암밍아웃이란 걸 했다. "저... 췌장암이라네요." 무슨 농담처럼 말이다. 한동안 멍했다. 이 농담 같은 소식을 아내에 말했다. 아내에게 암이라 말은 절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결혼 후 딸 하나를 낳고 세상을 떠난 큰 누님은 어머니에게 참척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어머니는 아홉수라 하던가? 칠순을 눈앞에 두고 암으로 눈을 감으셨다. 목회하던 형님 역시 마흔 중반에 아들 둘을 남긴 채 암으로 세상을 등지며 일찍 아내를 잃은 아버지에게 참척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아내에게 암은 남편의 가족력으로 각인되었다.

아내도 잘 아는 내 둘도 없는 불알친구는 지금 십이지장 암 수술 후 몇 년 동안 잘 지내다가 다시 암 투병 가운데 놓여있다. 역시 아내도 잘 아는 내가 존경하는 대학 친구의 아내분도 'her2'라는 암으로 투병 중이다. 다행히 모두 잘 견뎌내고 있어 고맙다.

주혜 작가의 암밍아웃에 뭐라고 댓글을 달아야 할지 한참 망설였던 이유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 힘들겠지만 이겨내야 한다. 기도하겠다, 여느 때처럼 행동해야 한다...' 기껏 생각해 내 적은 댓글이 한심했다. 뻔한 위로의 말이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허망한지 잘 알기에, 난 이런 위로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기에... 다른 친구들의 댓글에서도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혜 작가는 스스로 추슬렀다.
'암 선고와 함께 6개월 남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집으로 돌아와 책장에 꽂아두었던 무수한 책들을 보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을 다시 '읽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생에 대한 애착이고 일상 속 나의 모습이다. 나는 그것을 회복해야겠다.
나는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p. 51)'

게다가 암은 주혜 작가에게 이제까지 감춰두었던 삶의 이면을 보여주었다.
'밝은 햇살, 따뜻하고 포근한 바람, 사시사철 다른 모습과 온도로 다가오는 자연의 아름다움, 맛있는 음식, 사랑하는 이들과 아무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는 하루하루가 더 이상은 내게 허락되지 않음이, 미래에 남편과 아이들 곁에 내가 함께할 수 없음이 사무치게 서러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삶은 축복이 확실하다. (p. 211)'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에게 주어진 두 개의 삶을 제시하는 빨간 약, 파란 약처럼, 주혜 작가에게도 암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알약 하나를 꺼내 보였다. 먹겠는지 안 먹겠는지. 알약을 먹으면 주헤 작가 앞에 놓인 여명의 미래를 볼 수 있다. 알약을 먹지 않으면 당연히 미래를 알 수 없다. 알다시피 주혜 작가는 알약을 먹지 않았다. 미래가 궁금하지 않았다. 왜냐고?

'저는 죽는 순간까지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제게 남은 삶의 시간이 얼마만큼일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시간을 모두 암에게 내어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p. 13, 프롤로그)'


우리가 이제까지 맞이했던 그 어떤 여름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계절에, 주혜 작가가 맞이했던 그 어떤 시기보다 혹독했던 삶의 한 페이지를 북토크에서 다시 한번 주혜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듣게 되겠지. 그러고 나면 우리들 기억 속에는 여름 무더위가 차지했던 짜증 대신 북토크 후 주고받을 농담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고, 이 여름은 우리들이 주고받았던 그 어떤 농담보다도 유쾌한 농담을 한 계절로 남을 것이다.

해피엔딩,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그럼 지난 1년이라는 주혜 작가의 삶은 주혜 작가 입장에서 멀리서 본 희극일까? 가까이서 본 비극일까. 그냥 생각하기 나름이다. 주혜 작가는 멀리든 가까이든 상관없이 해피엔딩으로 결론짓고 인생을 보기 때문이다.

'저는 이 책을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삶은 축복이 맞습니다. 당신이 조금 더 축복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희망 끝에 기적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환우들, 환우의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삶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찾기를 바라는 분들뿐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도 희망이 가져다주는 기적과 마주할 시간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요. (p.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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