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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 - 우리는 어떻게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는가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한 젊은 정치인이 지난달 27일 대선후보 3차 토론회에 나와 여성 신체에 대한 폭력을 묘사한 혐오 발언을 했다. 거센 비판이 있을 거라는 걸 미리 짐작하고 했을까?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비난을 무릅써가며 그런 낯 뜨거운 말은 했을까? 생방송 중에 얼굴을 (일부러) 찡그려가며 말이다.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연구하는 이 책의 저자 정희옥의 말이 그 대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로 이득 보는 자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차별을 받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주목하다 보면, 그 이면에 차별로 인해 이득을 보는 구조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놓치곤 한다. (p. 7)'
이 책에서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권력 또는 엘리트들이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기 위한 도구로 써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역사를 다른 나라 사례와 우리나라 사례를 짝지어 놓아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도록 책을 구성했다.
차별을 견디며 조선족 여성들이 수행한 돌봄노동은 우리나라 여성이 더 나은 노동시장으로 옮겨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반세기 전에는 독일에 파견된 우리나라 간호사들이 차별 속에서 노동 강도가 센 간호사 일을 도맡아 한 결과 독일 정부는 교육비뿐만 아니라 인건비를 줄이는 이익을 챙겼다.
'파독 간호사 차별로 독일인들이 챙긴 이득을, 이제는 우리가 조선족 간병인을 차별하며 챙기고 있다. (p. 53)'
가난한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하와이에서 또는 멕시코에서 차별적 환경을 극복하며 그 나라의 경제를 떠받쳤다면, 동남아시아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 아래 위험을 감수하며 지금 우리 경제를 떠받친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 밥상에서 채소는 구경도 못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는 중국인을 죽이는 배화참사가, 일본에서는 수많은 무고한 조선인을 학살하는 관동대지진 참사가 벌어졌다. 이러한 폭력으로 일본은 만주 점령의 좋은 명분을 얻었음을 물론 국가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이득을 각각 취했다.
사회정화와 질서유지라는 구실로 국가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도 있다. 형제복지원 원생들과 유럽의 집시들이 그 사람들이다. 독재정권은 자국민의 일부를 잉여로 보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림으로써 통치를 이어갔고, 유럽 사회는 집시들을 차별해 정주사회를 공고히 유지해 세금을 걷어들이고 사회를 용이하게 통제하는 이득을 챙겼다.
한국의 한센병 환자들과 미국의 에이즈 감염인들은 낯선 질병이 생겼을 때 그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구실로 문제의 근원으로 낙인찍혀 희생된 사람들이다. 그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이 천벌을 받은 사람이 돼버렸고 도덕적으로도 타락하고 문란하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소수에 대해 다수가 두려움과 분노를 품게 만들어 다수는 소수와 구별되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고 국가는 이를 사회 통제 메커니즘으로 이용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여성 혐오 현상과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사이에 맞닿은 점이 있다. 경쟁에 많은 여성이 합류하는 시대가 됐다. 상대적으로 받은 피해를 보상받으려는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성을 표출하며 노골적으로 혐오한다. 남성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가부장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다. 300년 가까이 세월 동안 수십만 명의 여성이 마녀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졌다. 종교, 국가 권력 집단과 함께 권력과 부를 지켜내려고 만행을 저지른 유럽 중세 남성들의 모습에서 어딘지 모르게 여성 혐오를 조장하며 편가르기를 하는 우리나라의 한 젊은 정치인이 보인다.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의 고유한 본성인 편 가르기 행태는, 국가 권력과 사회구조가 '이득'을 위해 다수자와 소수자로 편을 가를 때 쉽게 이득을 받는 다수자 편의 일원이 되도록 이끈다. 그리고 내 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무관심, 적대감, 무관용을 보이고, 그들이 희생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p. 220)'
슬프다. 어쩌면 우리나라 미래 정치를 짊어졌어야 할 정치인이, 통합을 외쳐야 할 젊은 정치인이 정치적 이득을 목적으로 혐오로 편을 가르고 여성이 희생되는 것을 당연시하니 말이다. 대한민국 시민의 일원인 여성이 제일 먼저 외면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혐오를 원치 않는 대다수 남성들도 그에게서 얼굴을 돌릴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그 젊은 정치인을 의원직에서 제명하자는 청원인 수가 47만 명을 돌파했다. 혐오와 차별의 가해자는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