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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대학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7
김동식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3월
평점 :
'6월에 있을 '창의융합 경진대회' 사전 점검. 이 악마대학교의 존재 이유라고 봐도 무방할, '어떻게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것인가?'를 발표하는 날이 불과 며칠 뒤였다. (p. 8)'
악마들도 놀고먹는 시대는 지났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려면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킬지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진 어떤 욕망이 가장 약한 고리인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악마 벨의 친구 아블로는 '사랑을 공략하는 힘'으로, 비델은 '도박으로 돈을 버는 능력'으로 인간 파멸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벨은 영생이란 주제로 사전 발표하지만 교수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며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 다른 발표 거리를 찾아보라고 한다.
드디어 '창의융합 경진대회' 날, 벨은 '영생' 주제를 고집하며 '시간 역재생기' 개념은 발표한다.
'과거로 돌아간 그는 또다시 같은 삶을 반복하다가 다시 저를 만나 과거로 돌아가고, 또 똑같은 삶을 반복하다가 다시 저를 만나고, 다시 또, 다시, 다시, 영원히 맴돌게 되는 거예요. 제 제안을 받아들이자마자 그 인간은 현실에서 영영 사라져 끝나는 겁니다. 그 사라짐은 죽음보다도 더합니다. 영혼의 안식조차 없을 테니까요. 그야말로 영원히. (pp. 108, 109)'
대기업 최고경영자 대악마는 벨의 발표를 터무니없어하는 교수를 비난하며 벨을 스카우트한다. 인간들이 무척 비합리적이고 자신들의 '의지'를 지나치게 믿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인간이 '시간 역재생기' 덫에 넘어갈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악마 벨이 나에게도 '영생'을 제안해 온다면, 게다가 '시간 역재생기'와 다르게 현재 정보 가지고 과거로 갈 수 있어 똑같은 삶을 반복하지 않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어떨까? 제안을 받아들일까? 받아들인다면 과거 어느 시절을 가겠다고 할까?
과거 어느 시절이든 가고 싶긴 하다. 하지만 다시 잘 살 자신이 없다.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한들 지금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비록 다른 선택을 해서 다른 인생의 여정에 들어섰다고 하더라고 결국 내가 지나온 길로 돌아오고 말 것 같다. 지금 내 삶을 이끌어낸 무수히 많은 선택 앞에 놓였을 때마다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나는 나름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후회하는 모든 과거의 선택들, 어리석었다고 여겨지겠지만 그 어리석음도 내 삶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어떤 결정을 했더라고 어차피 후회는 하기 마련이다. 왜? 소설 속 주인공 악마 벨도 진심으로 인간에게 감탄하며 말했듯이 '인간은 대단히도 어리석은 존재'이기에.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바꾸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타인의 삶은 아랑곳없이 나 자신의 삶만 나아지기를 바라며, 심지어 환상 속에서 타인을 희생시키기까지 한다. 소설 속에서 악마의 꼬임에 빠져 파멸에 이르는 인간들 모두 이런 환상 가운데 있었다. 이기적인 환상이 악마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는 조건인 셈이다.
불행은 없고 행복만 가득한 삶을 꿈꾸는 인간,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다. 그걸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무료할까. 그 어리석은 인간은 불행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어리석음 때문에 스펙터클한 나날을, 여러 복잡한 감정을 맛보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