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현대지성 클래식 64
호메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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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는 <오디세이아>와 더불어 서양문학 가운데 가장 오래된 15,693행, 24권으로 이루어진 서사시이다. 그런 <일리아스>를 103장의 명화와 이미지, 435개의 각주 그리고 작품 이해를 돕는 풍부한 해설을 담은 현대지성의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으로 읽었다.


'우리는 <일리아스>에서 고대인의 문학적인 탁월함, 신과 인간이 어우러진 세계관, 인생의 가치관, 필멸의 인간이 겪는 고통과 비탄을 본다. (p. 769, 해설)'



<일리아스>의 배경인 트로이아 전쟁은 영웅 아킬레우스를 낳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서부터 시작된다.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귀를 써넣은 사과를 던지자, 서로 차지하려고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다투기 시작했다.


세 여신 가운데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제우스로부터 판정을 떠맡은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는 헤라가 권력을, 아테네가 지혜를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약속한 아프로디테를 선택, 사과를 건넸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여인 헬레나는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헬레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메넬라오스가 왕국을 떠난 사이에 헬레네와 트로이아로 도망친다. 이 소식을 들을 아가멤논은 헬레네를 구하기 위한 트로이아 원정을 준비한다.



트로이아 전쟁은 10년이나 지속됐지만 <일리아스>는 10년째 되는 해 50일간을 담은 서사시이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된다. 그 분노는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불화로 시작됐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스인에게 무수히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고,

수많은 영웅의 용맹한 혼백을 하이데스로 보냈으며,

그들을 온갖 개들과 새들의 먹이로 만든 저주 받은 분노를! (p. 21)'


아폴론은 화살로 그리스군 진영에 전염병이 돌게 만든다. 아폴론의 제관 크리세스가 딸을 풀어달라는 간청을 아가멤논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변의 압력에 못 이겨 아가멤논은 크리세스의 딸을 돌려보내기로 하지만 아킬레우스의 여인 브리세이스를 빼앗는다. 화가 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을뿐더러 어머니 테티스에게 부탁하여 제우스가 트로이아를 도와 그리스를 짓밟도록 한다.


아킬레우스는 가장 친한 벗인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 패해 죽고 나서야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전투에 나선다. 헥토르를 죽임으로써 친구의 복수를 하며 <일리아스> 이야기는 끝이 난다.



호메로스가 그린 신들의 모습은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화를 내는가 하면 시기하고 미워하며 심지어 욕망을 참지 못하는 등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다. 세상이 신의 뜻과 섭리에 따라 돌아간다고 믿는 당시 그리스에선 신을 모독하는 작품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시각을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꾼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기나긴 중세시대의 막을 내리게 한 르네상스가 고대 그리스를 재수용하는 의미라면 적어도 구체적으로 문학에서만큼은 호메로스의 작품을 재인식하는 문예부흥이 아니었을까?



영웅들은 트로이아 전쟁에서 분투하지만 신들의 개입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좌우된다. 영웅들의 활약과 상관없이 그들의 운명이 신의 손안에 있는 셈이다. 그렇더라도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며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전쟁 영웅들과 흡사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 외부의 힘이나 신에 의지하기보다는 내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발휘하여 고통마저도 극복할 줄 아는 위버멘쉬가 영웅들 삶과 겹친다.



'"... 노인은 아킬레우스의 발 앞에 엎드려 전사를 죽이는 헥토르를 생각하며 통곡했고, 아킬레우스는 자기 아버지를 떠올리며, 또한 어떤 때는 파트로클로스가 생각나서 울었다. 두 사람이 우는 소리가 막사 전체에 울려 퍼졌다. (...)

"아, 불쌍한 분이여, 정녕 당신은 마음속에서 수많을 고초를 견뎌오셨소. 당신의 용맹한 아들들을 많이 죽인 자를 직접 만나러 혼자 아카이오스인의 함선으로 올 생각을 하다니, 심장이 무쇠로 만들어진 게 분명하오. (pp. 751, 753)'


프리아모스는 아비 된 자로서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홀로 적진으로 들어가 아킬레우스에게 간청한다. 아들들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아킬레우스가 죽인 것도 모자라 시체까지 모욕하는 걸 바라본 프리아모스는 미쳐버린다.


죽을 각오로 찾아온 노인의 흰 머리와 흰 수염을 바라본 아킬레우스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한 다음 헥토르의 시신을 내준다. <일리아스>의 마지막에 배치된 이 화해 장면은 <일리아스>를 감동의 서사시로 만들어낸다.



이 밖에도 살펴볼 장면들이 풍부한 대서사시이다. 대서사시답게 웅장함을 물론 살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감정선이 담겼다. 때론 분노하고 때론 감동해 눈물을 흘리며 읽는 동안에 왜 <일리아스>가 고전 문학을 읽기 위해 꼭 거쳐가야 할 관문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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