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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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네스 팰트로 주연의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에서 주인공 헬렌은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집으로 오는 길에 급히 떠나는 지하철을 놓쳤을 때와 간발의 차이로 지하철을 탔을 때의 삶, 헬렌은 이렇게 두 가지 타임라인의 삶을 산다. 별것 없는 시간 차이로 생긴 두 삶은 극적으로 엇갈린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시간의 마디마디를 만지며, 촉각을 포함한 오감으로 우주의 질감을 느껴보았다. 당신의 새벽, 나의 낮, 누군가의 밤 그리고 나아가 저마다의 과거와 미래가 기적처럼 조우하여 우리 존재를 바꿔놓는 순간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추천의 말, 소설가 구병모)'

물리학자이자 작가인 앨런 라이트먼의 첫 소설, 시간을 과학적 상상력이란 토대에 기발한 철학적 사유를 얹어 풀어낸 <아인슈타인의 꿈>이 새롭게 다시 출간됐다. 이 책에는 우리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시간 이야기 서른 편이 담겨있다. 작가의 물리적 상상 덕분에 우리는 서른 개의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산책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물체의 시간은 느려진다는 시간 지연을 설명했다. 상상 속에서도 생각의 속도를 달리한다면 내 삶에서 경이로운 시공간 여행이 가능해진다.

가끔 삶이 되풀이된다고 여겨진다. 시간이 원圓이어서다. '아직 4시밖에 안됐어?' '벌써 4시야?' 기계시간과 체감시간이라는 두 가지 시간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희한한 일을 경험했다면 그 순간만큼은 원인과 결과가 일정하지 않은 세계에 잠시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입맞춤하며 포옹을 풀지 않는 순간은 시간의 중심지인 곳, 시간이 멈춰있는 세계다. 움직일수록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세계에 사는 사람은 전속력으로 달리며 살아간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하루만 사는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끔찍하다. 영원히 사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두 가지 종족으로 갈라진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모든 일을 나중에 하는 나중족, 삶에 끝이 없으므로 상상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이든 일찍 시작하는 지금족.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남해에서 잠시 느린 삶을 보냈다. 시간이 지역마다 다른 세계다. 시계 두 개를 붙여 놓으면 같은 속도를 똑딱거리지만 서로 떼어놓으면 놓을수록 속도는 더욱 차이가 난다.

선택의 자유가 없는 사람은 미래가 고정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미래가 고정되어 있는 세계에서는 옳음도 그름도 있을 수 없다. 옳고 그름은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는데, 행동이 모두 미리 정해져 있다면 선택의 자유는 없다. 미래가 고정되어 있는 세계에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p. 150)'


상상의 대부분은 시간 여행이다. 과거로 미래로, 느리게 빠르게, 멈추기도 하고, 시간을 왜곡하기도 하고. 상상뿐일까? 사실 우리는 실제로 여러 시공간을 살아간다. 우리가 보는 별빛은 몇 백 광년 전의 빛이다. 그리고 내가 밝힌 빛은 누군가가 미래에 볼 빛이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떤 사람에게는 과거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미래다. 상대적이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 못된 심보를 가진 신의 딸 에아가 아빠 컴퓨터에 들어가 모든 사람들의 죽는 시간을 전송해버린다. 수명을 알게 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어떤 사람들은 회의에 빠져 좌절을 느끼며 살아가는 한편, 또 어떤 사람들은 남은 시간을 즐기려고 한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사람에 따라 상대적인 시간을 산다. 죽는 날 내가 산 세계는 어떤 시간의 세계일까? 어떤 시간의 세계에 산 삶이 제일 많고 어떤 세계의 산 삶이 제일 적을까? 서른 개의 서로 다른 시간의 세계에 내 삶을 집어넣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어떤 시간의 세계에 살고 싶은지도 상상해 보고.

'한편 소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부분은 이 시간의 끝, 즉 세계 종말을 앞둔 거리의 풍경이다. 예전에는 종말 직전의 모습이라고 하면 다소 관성적으로 폭동, 방화, 약탈 등 혼돈으로 가득한 거리를 떠올렸는데, 이토록 평등하고 장엄하며 고요한 음악과도 같은 마지막을 생각한다면 그리 비통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이 세상을 통과하는 극히 찰나의 여행길을, 조금은 괜찮은 모습으로 다녀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추천의 말, 소설가 구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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