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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여정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김문주 옮김, 박재연 감수 / Pensel / 2024년 12월
평점 :
여행이란 익숙한 곳에서 낯선 세계로 떠나는 일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고 그곳 사람들에게 여행자는 낯선 존재가 된다. 여행은 낯선 경험을 기억에 편집해 놓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기억은 문학적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는 '소설을 쓴다는 건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라고 말하면서 '소설 쓰기는 여행이고 낯선 세계와 인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이라고 덧붙인다.
김영하는 그렇다 치고 세계적인 문학 거장들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였으며 그들 작품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작가의 여정>에서 서른다섯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본다.
'그리하여 이 책은 궁극적으로 먼 길을 떠났던 작가들, 그리고 모든 면에서 작가들의 창의성을 뒤흔든 도처의 장소들에 바치는 지도책이 되겠다. (p. 7)'
루이스 캐롤은 모스크바를 놀이공원의 요술 거울 같다고 묘사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거울에 되비치면서 뒤틀리는 모스크바, 루이스 캐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아이디어를 얻은 곳이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여러 차례 오리엔트 특급열차 타고 여행했다. 그가 열차를 타고 머물렀던 곳과 열차에서 만난 여행자들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속에 등장한다.
'헤세는 아시아에서 자신이 목격한 거의 모든 것들에 실망했다. (...) <싯다르타>는 1919년에서 1922년 사이에 쓰였는데, 이때는 헤세가 알프레드 힐레브란트의 <브라마나와 우파니샤드로부터>를 접하게 된 시기다. <싯다르타>는 그 독서의 산물로, 기원전 5세기의 인도를 배경으로 브라만교 사제의 아들이었던 싯다르타가 스스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야만 하는 서사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인도는 신화 속 장소다. 만약 헤세가 실제로 인도를 방문했더라면, 작품 속 배경을 그토록 아름답게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p. 122)'
알다시피 생텍쥐베리는 비행대회에 나섰다가 이집트 사막에 불시착했다. 갖은 고생을 했지만 기적처럼 살아 귀환했다. 사막에서 겪은 시련과 구조 경험을 생텍쥐베리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꼽는 <인간의 대지>에 담았다.
'울프는 아크로폴리스의 광경을 떠올리며 이렇게 썼다. "한편에는 히메투스 산과 펜텔레쿠스 산, 리카베투스 산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바다가 있었다. 해가 질 무렵 파르테논 신전에 서 있노라면, 눈으로 들어오는 분홍색 깃털 구름이 덮인 하늘과 온갖 색깔의 평원, 그리고 황갈색 대리석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p. 206)'
그렇게 그리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제이콥의 방> 배경 가운데 일부가 되었다.
여행에서 만나는 낯섦을 새로움으로 바꿔도 맥락은 변함없다. 그런 면에서 작가들의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신선한 소재의 풍요로운 원천을 찾아떠나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가의 삶과 문학 작품, 여행은 서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