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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조지 오웰 지음, 최성애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1월
평점 :
'올드 메이저(마르크스)'는 동물의 삶이 고통스럽고 자유롭지 못한 이유를 동물이 노동으로 일군 생산물을 인간들(자본가 집단)이 가로채버리기 때문이라고 연설한다.
'동지 여러분! (...) 바로 '인간'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인간입니다. 인간을 몰아냅시다. 그러면 굶주림과 중노동도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p. 12)'
올드 메이저는 죽었지만 동물들은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이라는 두 돼지를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켜 인간을 쫓아냈다. 농장 이름도 '매이너 농장'에서 '동물 농장'으로 바꾸고 동물들이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칠계명'도 만들어 헛간 벽에 써놓았다.
'칠계명을 단 하나의 구호로 효과적으로 압축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라는 구호였다. 그는 이 구호가 동물주의의 핵심 원리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p. 41)'
나폴레옹과 스노우볼 사이에 다툼이 있었지만, 나폴레옹이 강아지일 때부터 키운 자신의 수행견(KGB) 아홉 마리와 돼지 '스퀼러(기관지 프라우다)'를 앞세워 스노우볼을 쫓아내고 권력을 점차 독차지했다.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칠계명도 바꿔가며 돼지들의 권력을 확대하고 특권화한다. 돼지 외에 동물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오히려 혁명 전보다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끝내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은 동물들을 기만하며 인간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인다. 이 장면을 목격한 동물 농장의 동물들은 혼란스러워한다.
<동물 농장>은 조지 오웰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는 1945년에 출간한 정치 우화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내세웠지만 스탈린에 의해 독재국가로 변했다. 사회주의자 조지 오웰은 올바른 사회주의를 위해 소련의 사회주의를 비난이 아닌 비판을 하려고 이 소설을 쓴듯하다.
소련은 1991년 해체됐다. 그럼에도 지금 <동물 농장>을 읽게 되는 건, 냉전시대이던지 아니던지 독재자가 탄생하는 과정은 나폴레옹이 등장하는 모습과 사뭇 닮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우리는 12.3 내란을 일으킨, <동물 농장> 속 독재자 나폴레옹을 무척이나 닮은 한 사람을 겪고 있다.
법치(Rule of Law)를 주장하며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법위에 군림하는 모습이 칠계명을 교묘히 바꿔 특권을 누리는 나폴레옹과 똑같다.
'뮤리엘 이 클로버에게 읽어준 여섯 번째 계명은 이러했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아무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 웬일인지 '아무 이유 없이'라는 세 단어는 그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p. 99)'
'그는 클로버에게 벽에 쓰인 글을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지금 그곳엔 단 하나의 계명만 쓰여 있을 뿐이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p. 141)'
두 다리로 걸으며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라는 동물주의 핵심 원리마저 깨부수는 돼지들의 행동은 계엄을 통해 헌법마저 무시하는 모습과 너무 닮았다.
나폴레옹의 온갖 횡포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동물들의 의심을 잠재우는 스퀼러(기관지 프라우다) 또한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들며 그 어떤 비리도 감춰주는 레거시 미디어와 복사판이다.
그렇더라도 어떻게 독재가 가능할까.
노예처럼 밤낮 가리지 않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던 '복서(프롤레탈리아)'는 혁명 이전 보다 나은 삶을 기대했기에 행복했다. 하지만 복서는 큰 실수를 했다. 알파벳을 배우는데 게을리했다. 무지는 우둔함으로 이어지고 무기력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독재를 도운 셈이다. 허무맹랑한 말을 하는 데도 그 사람을 따르는 무지한 민중은 오늘날에도 개돼지 취급을 받으면서 태극기를 들고 독재자를 찬양한다.
당나귀 '벤자민(지식인층)'은 나폴레옹의 잘못을 알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침묵하며 책임지지 않으려는 현실의 지식인들. 오히려 논문 표절을 알면서도 덮어 권력에 편승해 이익을 챙긴다.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는 방조 역시 독재를 가능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본가들과 야합으로 독재는 굳어진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다시 인간에서 돼지로, 그러다가 또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계속해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더 이상 분간할 수 없었다. (p. 148)'
선한 동기로 권력을 잡았다 하더라도 권력의 맛에 부패해버리면 위험한 독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시대를 막론한다. 인간의 속성이다. 독재를 막는 유일한 길은 무엇일까. 시민들이 깨어있는 것뿐이다. 욕심을 좀 더 부린다면 '미디어 리터러시'로 무장한 채 깨어있는 것, 그것이 독재를 막는 최선책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권력 욕망은 계속될 것이기에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은 여전히 읽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