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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 ㅣ 소설, 향
최정나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월
평점 :
'엄마에게 자신 외에 소중한 것은 없었다. (p. 45)'
기주는 상은과 로아, 일곱 살 터울의 두 딸을 둔 엄마다. 기주의 남편은 딸 상은과 불화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삶의 마지막을 통제했다. 7년이 지난 후 기주는 새 남편과 상은 사이에 갈등을 해결하려고 그동안 방치되어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살아온 상은 앞에 로아를 데려다 놓는다.
엄마로부터 상은이 방치된 삶을 살았다면 로아는 유기된 삶을 살아왔다. 웃음과 침묵을 생존방식으로 터득한 로아에게 상은은 폭력을 가했다. 폭력의 방식은 교묘해졌고 그 수위를 점점 높여갔다.
'이유는 실제와 다르다. 나는 그냥 로아를 때리고 싶었다. 그게 다다. 말릴 사람도 없는데 상대가 저항하지도 않는다면 인간은 잔인해지기 마련이다. (p. 55)'
엄마 기주는 두 딸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엄마에게 화가 나면 상은은 로아를 엄마에게 보내 어떻게 맞았는지 설명하도록 했다. 그래도 기주는 상은이 말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나서기를 멈췄다.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고 난 뒤, 곧바로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 허겁지겁 다시 읽기 시작했다. 확인해야 할 문장이 있었다. (p. 163, 발문, 김이설).
나는 바뀌는 화자의 관점을 이해해 보려고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그 때문에 나는 네가 되어본다. 언니가 되어 나를 본다. 그리고 너의 눈으로 나의 세상을 본다. (p. 13)'
주위를 둘러보면 상처받은 피해자는 수두룩한데 상처를 준 가해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다들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약간의 아픔도 견디지 못하고 내 상처만 아프다며 피해자 틈에 숨어있는 걸까? 아니면 받은 폭력을 다른 폭력으로 돌려주며 가해자와 공범이 되어 숨은 걸까. 모두 공범이라면 잘못한 사람은 없는 셈이니까 말이다.
작가 최정나는 숨어버린 가해자를 찾는 방법으로 가해자인 언니가 되어 가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인 로아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선택한듯싶다. 왜?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를 바라보게 되면 소설가 김이설이 '발문'에서 밝힌 대로 가해자에게 서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폭력은 가족이나 조직의 위계 또는 계층, 젠더 등과 같은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으로 쉽게 치환된다. 그러면 가해자를 이해하게 되고 그 어쩔 수 없음은 오히려 동정을 이끌어내는 서사가 된다.
상은의 폭력도 문제지만 더 큰 책임은 엄마 기주, 인생이란 그런 것이니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 말하는 양육자의 방치에 있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안쓰럽고 삶에 지쳐 힘겹게 살아가는 엄마의 서사가 가해자를 감춘다.
반대로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보면, 피해자 스스로 절대 할 수 없는 피해자가 받은 상처와 고통을 샅샅이 살펴보는 복기가 가능해진다. 보통 피해자는 상처를 빨리 잊고 고통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려고 한다. 주변의 우리도 그렇게 조언하기 십상이고.
하지만 상은의 눈으로 로아를 바라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로아의 상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제까지 관습처럼 해 오던 대로 가해자에게 서사를 주어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는 순간, 가해자는 숨을 곳이 없어진다. 사랑해서, 가족이니까, 널 위해서라는 가해자의 변명도 사라진다. 오롯이 드러난 로아의 상처, 피해자의 증언만 남는다. 그리고 그 순간, 비로소 피해자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