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출신 루이스 세풀베다는 환경 문제의 각성이 담긴 사회적 메시지를 작품으로 전하는 작가로 알려졌다. 생애 마지막 작품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는 라틴 아메리카의 신화와 역사 속에서 전해내려오는 신비로운 고래 이야기다. '나, 달빛 고래로 말하면 피오르 해안과 섬 앞바다 태생의 향유고래종 수컷이다. (p. 26)' 고래잡이배 선원들은 모차섬 근처에서 처음 만난 이 고래를 '모차 딕'이라 부른다.죽은 향유고래가 칠레 남단 해변에 떠밀려 왔다. 고래 앞에서 '바다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라프켄체 부족 아이가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 이야기는 그 아이와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아이가 건네준 조개껍질을 귀에 대자 달빛 향유고래, 모차 딕이 '고래의 기억에 담긴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모차 딕'은 할아버지 향유고래한테 '트렘풀카웨' 할머니 고래 넷을 보살피라는 부탁을 받는다. 해변에서 필요한 양식만 얻고, 항상 베풀어주는 바다의 고마움을 아는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부족 라프켄체. 이들 가운데 누군가 죽음을 맞이하면 그 영혼을 '트렘풀카웨' 고래가 섬으로 데려다준다.'나는 인간들의 배에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들의 용기를 존중했고, 그들 또한 바다에서 사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 22)''모차 딕'은 인간을 존중했기에 처음엔 다가오는 고래잡이배를 멀리 쫓아내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암컷 고래와 새끼 고래를 잡아 죽이는 모습을 보고 분노한다. 그 고래잡이들은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라프켄체 사람들과 달리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인간이었다. 그 이후 고래잡이배를 공격해 작살내고 고래잡이들과 생존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그들은 우리가 무서워서 우리를 죽인 것이 아니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은 우리 고래의 몸속에 빛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어둠에서 해방되기 위해 우리를 죽이는 것이다. (p. 51)'1820년 11월 20일 칠레 태평양 연안 모차섬 앞에서 거대한 몸집의 향유고래가 고래잡이배 한 척을 침몰시켰다는 이야기 전해져온다. 그 뒤 20년이 지나 죽은 향유고래의 몸에는 작살이 백여 개나 박혀 있었다고 한다. '작은 정어리도 다른 정어리를 공격하지 않는다. 느림보 거북이도 다른 거북이를 공격하지 않는다. 탐욕스러운 상어도 다른 상어를 공격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자기와 비슷한 이들을 공격하는 종은 인간밖에 없는 것 같다. (p. 36, 37)'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인간이 보는 흰고래 '모비 딕'은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 피쿼드는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백인들에 맞서 최초를 전멸한 부족이었다. 이 부족과 같은 이름의 피쿼드라는 포경선의 입장에서 흰고래는 백인을 암시할 수도 있다. 반면 스타벅의 입장에서 '모비 딕'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화합과 조화롭게 지내야 할 자연일 뿐이다.하지만 향유고래 '모차 딕'의 입장에서 본 인간은 그저 악일뿐이다. 서로 죽이는 이해할 수 없는 종, 인간. 자기보다 덩치가 커 두려움의 대상임에도 쓸모가 있다면 가차 없이 떼로 몰려가 죽여 원하는 것을 얻고야 마는 종, 인간.그래서 평화로운 자연을 지켜나가는 일에 인간은 기대할 만한 종이 아니다. 설사 자연의 무서움을 안다고 해도 바로 눈앞에 취할 이익이 있다면 환경을 파괴할 종이다. 왜 우리는 인간과 싸우는 '모비 딕' 또는 '모차 딕' 편에 서서 응원하게 될까? 그건 그 고래들이 자연의 힘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갈 환경을 지켜낼 존재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