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지기 시작하는 초여름이면 한강을 끼고 있는 우리 동네는 팅커벨(팅커벨과 생김새가 비슷한 동양하루살이를 우리 동네 사람들이 부르는 별칭)로 가득해진다. 환하게 불 켜진 쇼윈도에 잔뜩 붙어있을 뿐만 아니라 달리는 자동차 앞 유리 날아와 부딪치기 일쑤다. 벌레를 보는 것만으로 비명 지르며 소스라치는 딸아이는 아파트 현관문에 팅커벨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들어온다. 딸아이에게 팅커벨은 없어져야 할 존재다.동양하루살이가 떼를 지어 나타나는 건 한강 수질이 개선됐다는 증거다. 생애 대부분을 물속에서 유충으로 지내다가 성충으로 사는 1~2일을 큰 무리를 지어 혼인 비행하는 데 쓰고는 생을 마감한다. 동양하루살이에게는 번식을 위한 신성한 짝짓기 비행일 텐데... 입이 없어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데도 징그럽다는 이유로 우리는 싫어한다.몇몇 곤충에 자신의 이름이 붙었을 정도로 곤충을 사랑하는 조지 맥개빈의 <숨겨진 세계>는 지구 생명체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수많은 곤충의 미스터리를 밝히고 곤충이 처한 위험을 살펴보는 곤충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곤충은 육지에 나타난 최초의 동물이며 하늘을 난 최초의 동물이기도 하다. 곤충은 여섯 가지 초능력을 지닌 덕분에 지구를 점령했다. '절지동물이므로 몸은 보호하는 겉뼈대로 덮여 있고, 대개 몸집이 작아서 큰 종들보다 더 잘 살아남는다. 건조한 육지에 올라올 때 적합했던 효율적인 신경계와 환경을 감지하는 탁월한 능력도 지닌다. 이윽고 비행 능력까지 갖춤으로써 궁극적인 이주 개척자이자 탈출 묘기 전문가가 된다. 마지막으로 유달리 빠른 속도로 번식하고 불어난다. (p. 65)'곤충은 지구가 제 기능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경이로운 존재다. 지구의 생태계를 곤충이 지탱한다. 곤충 가운데 한 종인 벌이 멸종하면 육상 생물종의 4분의 1이 생존 위협을 받을 정도다. 곤충을 얕보고 무시하는 것도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이다. 죽은 조직과 잔해를 분해해 지구에 사체가 쌓이지 않도록 하는 험한 일을 곤충이 담당한다. 지금도 일부 곤충을 먹긴 하지만 우리 식탁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곤충이 육류를 대체해 우리 식탁을 독차지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꿀이라는 벌의 토사물을 먹는다. 연지벌레로부터 색소를 얻기도 한다. 우리 피부를 감싸는 가장 사치스러운 실크도 누에의 침샘에서 나오는 물질이다. 이렇듯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곤충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한강을 걷다 보면 곳곳에 설치해놓은 끈끈이에 동양하루살이들이 붙어있고, 포충등에 타다닥 타죽는 소리가 들린다. 곤충들을 모조리 잡아 없애는 게 맞나. 농경이 시작되면서 숲을 경작지로 만들었고 작물이 자라는데 방해된다는 생각에 우리는 곤충을 죽여왔다. 환경 위기를 잘 버티는 곤충임에도 살충제를 마구 뿌려대는 인간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곤충의 종을 잃게 될까.우리가 이 땅을 정복하며 이룬 성공은 자연 세계의 엄청난 희생의 대가인 셈이다. 결과야 어찌 되든지 말든지 자연을 희생물로 삼아 언제까지 인류가 버틸 수 있을까.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을 구해 거기서 살면 될까? 자신의 배설물조차 처리할 수 없는 인간이 과연 그곳에선 살 수 있을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지구를 구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지 않을까?'물고기처럼 생긴 우리의 원시 조상이 얕은 물에서 지느러미처럼 생긴 다리로 일어서서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마른 땅을 바라보기 훨씬 이전부터 곤충은 이 지구에 살고 있었음을 잊지 말자. 그리고 곤충과 그 친척들은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살아가리라는 것도. (p. 328)'예쁜 딸~ 팅커벨이 아무리 징그럽더라도 참아야 해. 팅커벨이 있어야 지구의 생태계가 무너지지 않아. 그래야 우리가 자연과 함께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거고. 팅커벨이 진짜 팅커벨인 거지.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곤충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를 위해 곤충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알아야만 해.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의 안부를 물어야 해. 지구, 이곳에서 계속 숨 쉬며 살기를 원한다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