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패신저, 파리
패신저 편집팀 지음, 박재연 옮김 / Pensel / 2024년 10월
평점 :
200여만 명이 사는 도시 파리, 프랑스에서 가장 큰 도시치곤 적은 인구다. 하지만 이곳 파리가 프랑스 전체에서 차지하는 힘은 가장 큰 도시답다. 파리는 프랑스 전체 GDP의 3분의 1을 담당할 뿐 아니라 유럽에서 GPD가 가장 높은 도시다. 일자리도 4분의 1이 파리에 집중돼있다.
또한 파리는 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에펠탑, 몽마르트르 언덕, 센 강을 따라 콩코르드 광장에서 에투알 개선문에 이르는 샹젤리제 거리, 연 관람객 890만 명으로 세계 미술관 가운데 제일 많은 사람이 찾는 루브르, 퐁피두 센터 등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곳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여행책자에서 소개하는 뻔한 곳을 찾아가 사진에 남기며 여행한다면 그 도시의 진짜 여행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개념의 '북커진(북+매거진)' <패신저>는 진짜 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문화 여행서'이다.
'장문의 에세이, 탐사 보도문, 프로프타주 문학, 시각적 서사 등 다양할 글을 통해 여러분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문화와 정체성, 공적 담론, 국민 정서, 핫이슈, 다채로운 기쁨과 아픔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뒷날개)'
<패신저>의 첫번째 여행지는 바로 파리다.
우리가 예술적 관점에 바라보는 파리의 랜드마크 대부분은 정치권력이 주도적으로 개입한 결과물이다. 지금은 민간 재단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보부르 효과일 뿐, 이들 건축물들은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을 기대하는 상품에 불과하다. 사회적 박탈감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시위대는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곳으로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거리 샹젤리제를 택했다.
자유, 평등, 박애의 도시 파리에도 편견과 폭력은 있었다. 중국계 프랑스인들을 비롯한 아시아 커뮤니티가 그 대상이다. 이들 모두 프랑스인이지만 지금도 다양한 방법으로 프랑스인이 되려고 노력한다. 미식의 도시 파리에서 미슐랭을 받기 위한 도전이 아닌 계절을 대표하는 음식재료로 고급 요리를 선보이며 파리 사회의 미식 문화를 바꾸는 이들이 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여성상 '파리지엔', 이젠 파리에서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파리지엔의 신화가 없다면 파리는 어떻게 될까? 이 밖에도 파리에서 아프리카를 보여주는 콩고공화국에서 시작된 사페의 미학, 뜻밖에 불친절함을 겪고 얻는 파리 신드롬, 반인종주의와 반파시즘의 철학을 간직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팀 레드 스타 FC 등 파리가 품은 진짜 이야기가 <패신저, 파리>에 담겨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전쟁 중이어서인지 열세 편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주목한 꼭지는 '두 건의 유대인 노파 살해 사건이 프랑스를 뒤흔든 방법'이었다.
'루시 아탈 Lucie Attal과 미레유 놀 Mireille Knall의 연이은 죽음과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를 둘러싼 논란은 종교에 대한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이 사건은 반유대주의에 의한 살인일까, 아니면 우파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이슬람 혐오를 부추기기 위해 악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이슬람 반유대주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일까? (p. 121)
두 살인 사건은 발생한 지 한참 지났지만 두 죽음을 여전히 정확히 규정하지 않아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1978년부터 프랑스에서는 정치적 목적으로 인종 또는 종교에 대한 인구 조사 수집이 불법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인종차별이나 인종주의적 폭력이 여전한듯하다.
인종혐오를 반유대주의로 세탁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이슬람인을 살인자로 의심하는 여지를 두고 이슬람이 문제라는 식으로 말이다. 다른 인종혐오도 마찬가지다.
'벤진은 이러한 비극의 또 다른 요인은 이른바 '공감대 형성'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누가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일례로, 국가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보존하는 데 전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반면, 노예 제도의 기억을 보존하는 데는 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p. 130)'
북커진 <패신저, 파리>가 파리의 뒷골목을 가이드 해주는듯했다. 파리라는 도시의 환상과 고정관념도 깨주었다. 파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파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패신저>가 가이드 해줄 다음 도시가 궁금하다. 어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