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날 대신해 소설, 잇다 5
김명순.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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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날 대신해>는 작가정신이 근대 여성 작가의 작품을 백 년이 지난 현대 여성 작가가 재해석하는 '소설 잇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다.

김명순은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소설가이자 일본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에 능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첩의 딸'이라는 굴레로 극심한 '학대'를 받은 여성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천부적인 재능에도 문단에서 추방당했지만 주체적 여성상을 끊임없이 고민한 작가다.

박민정이 김명순과 궤를 같이 한다는 생각은 이른 데뷔를 했다는 점에서 재능이 닮았고, 여성 혐오의 다양한 양상과 스피커 잡을 기회가 좀처럼 없는 이들의 말을 작품에서 짚어냈기 때문이다.


김명순의 데뷔작 <의심의 소녀>에서 소녀 '범네'는 외할아버지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가는 곳마다 '꽃인가 의심할 만하게 몹시 어여뿐' 범네는 관심을 받지만, 이내 자살한 첩의 자식임이 드러나면 의심받는 소녀가 돼버려 불쌍한 아이가 된다. 그러면 다시 외할아버지와 그 마을을 떠난다.

'절기는 하추동夏秋冬 삼계三季가 지나면 반드시 양춘이 오건만-
불쌍한 어머니의 불쌍한 아해? (p. 27)'

김명순의 <돌아다볼 때>의 주인공 소련은 영문과를 졸업한 신여성으로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이미 결혼한 젊은 이학자 효순의 강연을 듣고 좋은 감정을 품는다. 효순은 하웁트만의 <외로운 사람들>을 읽는 소련에게 그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면서 당시 사정에 따라 결혼해 처자식이 있는 자신이 가장 외로운 사람임 강조한다. 덧붙여 소련과 이상적 사랑을 나누고자 한다.

'어떠한 노여운 말끝에든지 혹은 혼인 말끝에든지 반드시 "너희 어머니를 닮아서 그렇지, 그러기에 혈통이 있다는 것이야." 하고 불쾌한 말을 들리었다. (p. 47)'

이런 관계를 눈치챈 고모는 소련의 어머니가 첩이었고 그 피를 이어받았을까 걱정돼 서둘러 최병서와 결혼시킨다. 최병서는 소련을 학대하고 시어머니는 들볶아대지만 이를 참고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는 소련은 이상적 사랑을 꿈꾸며 이를 견뎌낸다.

김명순의 <외로운 사람들>은 하웁트만의 <외로운 사람들>을 당시 시대에 맞춰 번역한 작품이라고 박인성 문학평론가는 설명한다. 최씨 가문의 네 남매 가운데 순희와 순철의 삶에 주목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신여성 순희는 정택의 결혼식을 앞두고 정택과 동경으로 도피 행각을 벌인다. 그곳에서 순희는 정택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동경으로 간지 두 달 만에 정택과 이별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순희의 동생 순철은 열네 살에 할머니 뜻에 따라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던 두 살 연상인 복순과 일찌감치 결혼한다. 여순으로 유학 간 순철은 청국의 왕녀 순영을 알게 되면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다. 사고로 혼자 남게 된 순영은 조선으로 와 학교를 다니면서 순철과 결혼을 원하지만 순철은 복순과 순영 둘을 두고 괴로워한다.

순희는 정택이 다른 여인을 만나는 모습을 보며 괴로움 속에 자살하고, 순철을 기다리다 지친 순영은 끝내 병이 깊어지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순철은 속으로 '내 상상이 맞았다. 하나 순희 누님은, 정택 씨를 사랑하기도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것은 연민이란다. 그러면 연민과 사랑의 다른 것은 무엇일까. 분명한 경계선이 있을까 없을까 의문이다. 의문이다' 하고 생각했다. (p. 218)'


박민정은 <천사가 날 대신해>에서 '이 소설의 집요한 시선이야말로 온전히 애도되지도 의미화되지도 못하는 여성의 죽음이 얼마나 우리의 현실에 일상화되고 보편화되어 있는지 (p. 325, 박인성 문학평론가의 해설)'를 보여준다.

'나'의 동창생 세윤은 이혼한 후 직장을 다니면서 '나'와 JLTP 2급 시험공부를 하다가 시험을 앞두고 죽는다. 세윤이 남긴 브이로그를 보던 중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상에 등장하는 로사를 발견한다. 로사는 '나'의 학교 후배이자 세윤의 직장동료로 세윤에게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경고한 인물이다. '나'는 세윤의 죽음에 로사가 관여돼 있음을 직감하지만 증거는 없다.


박민정은 김명순의 작품에서 소외된 여성의 죽음을 읽었다. 김명순의 시대에는 첩의 딸이라는 이유로 신여성이라는 이유로 존재마저 부정당하고 자유로운 사랑마저 못 이루고 죽음에 이른 여성이 있었다. 그 죽음의 가해자는 당시 풍습에 따라 조혼을 통해 얻은 아내와 교육받고 아름다운 신여성 사이에서 자기 연민만을 강조하는 이기적인 남성이었다.

그렇다면 박민정 시대에 죽음에 이른 여성의 가해자는 누구일까? 여전한 가부장제? 남성우월에서 파생된 것들? 박민정이 소설 <천사가 날 대신해>에서 가해자로 지목하는 건, 남성과 여성 모두 즉 죽음은 이중의 소외다. 그리고

'선명한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선명한 가해자를 찾기는 힘들어지는 현실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위기이기도 하다. (p. 327, 박인성 문학평론가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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