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진열실 을유세계문학전집 13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골동품 진열실'은 노老후작 카롤 데그리뇽의 살롱에 모인 배타적인 사교계를 일컫는데, 이 모임에 낄 수 없는 부르조아들이 은근히 비웃는 태도로 붙인 별명이다. 이곳에 모이는 귀족들은 가문의 혈통과 전통에 집착할 뿐만 아니라 계급적 편견이 가득한 나머지 인종적 우월성까지 가져 평민들과 자신들은 다른 인종이란 믿음이 있다.


'<골동품 진열실>은 명문가 출신으로서 파리에 상경해서 파멸하는 가련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p. 8)'

카롤 데그리뇽 가문은 일체 불순한 피가 섞이지 않았고 유서도 깊다. 데그리뇽 후작은 가문을 잇기 위해 순수한 귀족 혈통 누아스트르 가문의 드 누아스트르 양과 결혼한다. 하지만 그녀는 데그리뇽 가문에 아들 빅튀르니앵을 남기고 아이를 낳던 중 사망한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데그리뇽 후작의 성은 파괴되고 재산도 몰수된다. 다행히 이 가문의 집사인 쉐넬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약간의 재산은 보존된다. 혁명의 소용돌이가 끝나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졌지만 데그리뇽 가문의 상처를 대혁명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데크리뇽 후작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여동생 아르망드 양은 뒤 크루아지에의 청혼도 거절하며 조카 빅튀르니앵을 아들처럼 보살폈다.
'그녀가 성년이 되었을 때부터,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헌신으로 얼룩져 있었다. 자기 오빠에 대해 그녀는 일종의 숭배의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데그리뇽 양으로 죽을 것입니다." 그녀는 공증인에게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p. 28)'

빅튀르니앵은 수려한 용모와 재능을 갖춘 젊은이지만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책임감도 없었다. 아버지데크리뇽 후작과 고모 아르망드 그리고 집사 쉐넬의 무한한 희생을 헤아리지 못한다. 이기적인 모습만을 드러내며 가문의 기대를 저버린 빅튀르니앵은 파리에서 방종과 쾌락만을 추구하며 문제를 일으킨다.

후작과 쉬넬이 죽은 다음 빅튀르니앵은 가문의 적이었던 낮은 신분의 브루주아 뒤 크루아지에의 조카딸과 결혼한다. 아내의 지참금으로 빚을 갚고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파리에서 독신 생활을 즐기며 살아간다.

'데그리뇽은 왕정복고기의 귀족계급을, 뒤 크루아지에는 부르주아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싸움은 이미 일종의 계급투쟁이다. 집사 쉐넬은 귀족계급이 역사적 변화에 적응함으로써 계속해서 역할을 행하기를 바라는 발자크 같은 사람들의 상징이다.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부유한 상속녀들과, 그리고 후일에는 미국 백만장자의 딸들과 결혼함으로써 재산을 얻어 그것을 쾌락에 소비하는, 싸움도 해보기 전에 패배한 저 젊은 귀족층을 빅튀르니앵은 상징하고 있다. (p. 253, 해설, 이동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골동품 진열실>은 귀족계급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공작부인이 말을 계속했다. "도대체 이곳의 당신들은 정신이 나갔습니까? 지금은 19세기인데, 대체 당신들은 15세기에 머물고자 하는 겁니까? 이보세요, 더 이상 고귀한 신분이란 없고, 귀족계급이 있을 뿐입니다. 대포가 이미 봉건 제도를 파괴했듯이 나폴레옹의 민법전은 양피지 족보를 사장했습니다. (p. 229)'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옛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집단이 등장하는 역사는 당연하다. 발자크는 혁명에 따라 스스로 변화해야 함에도 그러한 갱신의 노력을 하지 않고 역사의 뒤안길로 귀족계급이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이 남아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귀족계급에 대한 예리한 풍자, 즉 발자크다움을 보여준다. 보수적 정치이념의 발자크가 작품세계만큼은 진보라는 문학적 평가를 받은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