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 박사는 특유의 호소력 짙은 어조로 선언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침몰 직전의 범선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이미 구명보트에 올라탄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무감각한 사람들도 있죠." (p. 14)'세계의 전자 폐기물과 폐플라스틱이 실리콘섬으로 들어온다. 이 섬에서 폐전자제품을 해체해 재활용할 수 있는 부품을 뜯어내고 재가공 처리한다. '쓰레기인간'이라고 부르는 노동자들이 값비싼 전자 장비를 대신해 눈과 코와 손으로 작업을 한다. 실리콘 섬은 산성 용액이 고인 웅덩이가 곳곳에 있고, 화학약품과 플라스틱을 태울 때 피어오르는 유독 가스로 섬에 고루 퍼진 회색빛 대기가 생물의 몸속으로 스며든다. 여자들은 새까만 물에 맨손으로 빨래하고 아이들은 플라스틱 잿더미에서 뛰어다니고 폴리에스터 필름이 둥둥 떠다니는 검푸른 연못에서 헤엄치며 장난쳤다.테라그린의 책임자 스콧 브랜들은 실리콘섬을 친환경 일자리로 바꿀 리사이클링 제안을 갖고 섬에 도착해 실리콘섬의 삼대 가문과 협상을 진행한다. 하지만 스콧 브랜들은 SBT-VBPII32503439라는 부호가 새겨진 인공 기관을 찾아내는 임무도 있다.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불가사의한 일이 실리콘섬에서 벌어진다. 그 일은 스콧 브랜들과 동행한 천카이종이 구해준 쓰레기인간 미미가 관조 해변에 버려진 록히드 마틴의 로봇 메카와 프로그래밍되면서부터 비롯된다. '웨이스트 타이드 프로젝트'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 소설의 작가인 천추판은 중국 광둥성 산터우 부근의 구이위賞嶼에서 자랐다. 구이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 폐기물 재활용 단지로 유엔이 '환경 재난' 지역으로 지정했다. 구이위(구이硅는 실리콘을, 위嶼는 작은 섬을 뜻한다)는 공교롭게도 <웨이스트 타이드>의 배경인 실리콘섬과 발음이 같다. 전선 더미에서 노는 아이들, 산처럼 쌓인 전자 부품들, 검게 오염된 하천 등은 천주판이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생생한 현실인 셈이다.몇 주 전 디즈니+ 드라마 <지배종>을 정주행했다. 생명공학기업 BF 대표 윤자유가 인공 배양육에 성공하면서 인간과 기술, 권력과 정의 사이에 갈등 스토리가 숨 막히는 전개되는 줄거리다. <지배종>이 생명공학과 윤리 문제를 다룬 드라마라면 <웨이스트 타이드> 사이버 인간화되는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윤리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 <지배종>의 윤자유가 성공한 기술과 유사한 기계 몸, 즉 의체를 몸에 지니고 살아간다.실리콘섬처럼 황폐해져 가는 지구의 환경 문제도 심각하지만 의체 사용을 두고 또 계급이 형성된다. (<지배종>의 윤자유도 자신이 개발에 성공한 인공 배양육을 가진 자들만 사용할까 걱정한다.) '죽음보다 훨씬 더 두려운 것은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존엄을 잃는 것이었다. (p. 64)'곧 다가올 미래에도 못 가진 자들은 영원히 바쁘게 일해야 하나. 실리콘섬의 '쓰레기인간'들처럼 폭력 아래 놓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 건 투쟁을 해야 하나. 항상 그랬던 것처럼 불공평한 부분을 다음 세상에 희망을 거는 윤회라든지 천국으로 스스로를 위로해야 하나. '"... 사람들은 언제나 잘못된 일에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지..." (p. 347)'혹시 잘못된 미래를 선택한 인류와 사이버 인간이 받을 대가마저 불공평하게 치르게 되는 건 아닌가? 이 소설이 현실 너머의 SF 임을 알면서도 스릴을 즐기며 읽어야 할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어쩌면 곧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먹먹한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