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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만든 세계 -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이야기
마틴 푸크너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19년 4월
평점 :
문학이 없었다면, 다시 말해 이야기가 입으로만 전해졌고 글로 기록되지 않았다면... 철학과 정치사상은 물론 종교적 믿음도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마틴 푸크너는 말한다.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글로 쓰인 이야기가 있다. 4,000년에 걸쳐 인류는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 이 세상에 가득 채워놓았다. 텍스트는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만들었다.
하버드 대학의 마틴 푸크너 교수는 <글이 만들 세계>에서 근본 텍스트를 중심으로 제국과 국가들의 흥망성쇠, 철학과 정치사상 그리고 종교가 탄생하는데 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책에서 문학의 역사는 바로 이 최신 혁명, 우리의 글쓰기 기술 혁명에 발맞춰 쓰인다. (p. 21)'
알렉산드로스를 사로잡은 <일리아스>는 그의 원정과 함께하며 그리스 문자를 다양한 민족들의 공통의 문자로 만들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 당시 살았던 이들의 내면의 삶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근본 텍스트 <성서>는 에스라가 펼쳐 보였을 때 경배의 대상이 됐다.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글로 전환시킴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상이 됐다. 무라사키라는 여성의 관찰 기록은 일본 궁정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주는 액자 이야기 <천일야화>는 세계문학의 위대한 형식 하나를 만들어냈다.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힘입어 종교개혁을 이루어냈다. 마야의 서사시 <포폴 부>는 사라진 마야 문명이 독자적인 문자와 화려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돈키호테>는 저작권이라는 재산을 문학 시장에서 훔쳐 가는 해적들을 물리쳤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문학을 자르고, 붙이고, 변형시켜서 독자들에게 유통하는 최초의 저술 기업가였다. 괴테의 중국 소설에 대한 관심은 세계문학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공산당 선언>은 근대에 가장 영향력을 미친 텍스트다.
아흐마토바와 솔제니친은 압제하에서 어떡해야 문학이 살아남는지 그 방법을 제시했다. 서아프리카의 구전 문학 <순자타 서사시>는 말 재주꾼에 의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글로 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데릭 월컷은 서사시 <오메로스>로 하나의 장소와 문화, 언어를 문학으로 번역함으로써 카리브 해 신생국가 세인트루시아에게 근본 텍스트를 선사했다.
'문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발화(發話)를 시공간으로 깊숙이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다. (p. 416)'
물론 문자 자체로도 힘을 발휘했지만, 종이, 인쇄술, 책 그밖에 글쓰기와 관련한 기술과 서로 작용했을 때 글은 강력한 세력으로 떠올랐다. 글이 보존되고 전달되면서 시공간을 뛰어넘게 되자 지식의 축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글은 종교를 만들었다. 국가도 만들었고 사상도 글을 토대로 한다. 결국 우리는 '글이 만든 세계'에 산다.
'근본 텍스트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또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면서 커다란 권력과 중요성을 쌓아가고 마침내는 여러 문화들 전체의 소스 코드가 된' 텍스트들이다. (p. 464, 역자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