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10주년 한정 특별판, 양장)
한강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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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p. 7, 첫 문장)'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도청을 함락하던 날 계엄군 총에 목숨을 잃은 중학교 3학년 동호라는 소년의 슬픈 이야기다.

정대는 문간채에 누나와 사글세로 사는 친구다. 시위대 사이에 끼어있던 열다섯 살 동호는 계엄군 총에 맞아 쓰러진 정대를 두고 달아난다. 정신을 차리고 죄책감에 친구를 찾아 나선 동호는 임시 안치소가 마련된 상무대를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시신 수습을 도우며 시민군에 참여한다. 계엄군이 도청 무력 진압에 돌입하던 날 형과 누나들이 동호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지만 동호는 고집을 피우며 도청을 떠나지 않는다. 결국 그날 목숨을 잃는다.

작가는 시체로도 증언할 기회조차 없는 실종자, 죽은 정대에게 목소리를 내주어 실종자의 한을 풀어준다. 이어서 그날 동호와 같이 있었던 고등학생 누나 김은숙과 임선주, 대학생 형 김진수 그리고 동호의 어머니를 등장시켜 동호에 대한 회상과 그날 이후 이들이 아물지 않은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삶을 얼마나 힘겹게 지탱해 가는지를 들려준다.


해병대에 입대해 1982년 10월 자대 배치받았을 때 제대 두 달을 앞둔 선임 기수가 있었다. 데모 기수라고 불렀는데 1980년 데모하다 잡혀 강제 입대당한 대학생들이었다. 훈련병 시절부터 어느 정도 고참이 될 때까지 이들은 구타와 함께 끔찍한 괴롬힘을 당했다.

'그때 나는 수유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집에 돌아오면 대문 안쪽에 떨어져 있는 석간 ㄷ일보를 집어 들고, 좁고 긴 마당을 따라 걸으며 머리기사를 읽었다. 광주 무정부 상태 5일째. 사진 속의 검게 그을린 건물들. 이마에 흰 띠를 두른 남자들로 가득한 트럭, 집안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침통했다. 안돼, 오늘도 전화가 안돼. 대인시장통의 외가에 엄마는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 (p. 208)'

1980년 5월 '광주 무정부 상태'일 때 나는 재수생으로 서울 종합반 학원으로 다니며 입시 준비를 했다. 그러니깐 내가 재수를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해병대 데모 기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아니, 전철역에서 전경들이 내 가방을 뺐어 거꾸로 쏟을 때 폭력이 두려워 그 수치를 참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쏟아진 것들을 가방에 주워 담았던 걸 보면 나에게 항쟁 주체로서의 모습은 없고 비겁함이 얼핏 보인다.


손석희 앵커는 2016년 5월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던 날,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한강이 천착해온 주제라며 <채식주의자>가 개인과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을 다룬 거라면 <소년이 온다>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한 폭력을 다룬 것이라고 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p. 17)'

광주 시민에게 폭력을 가한 세력을 국가라 할 수 있을까? 권력에 눈이 멀어 반란을 일으켰고 그 권력을 지키려고 폭력을 휘두른 반란군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라면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이들에게 총을 쏠 수 없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p. 117)'

국가라면 두 손을 들고 내려오는 어린 학생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할 수 없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p. 133)'

국가라면 조금은 당당한 구석이 있었을 텐데, 겁에 질려 허세 떠는 모습뿐이다. 양심, 광주 시민들은 약했지만 그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양심은 무서웠다. 계엄군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팔십 만발(광주 사십만 시민의 두 배) 탄환으로 무장한 군인들은 광주 시민의 양심을 보자 겁에 질려 총질만 해댔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p. 114)'

배고픔을 참지 못해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먹어도 되냐고 묻는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죽음 택했을까. 이데올로기도 뭣도 아닌 삐뚤어진 영화놀이로 두려움을 감추는 비겁한 당신들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양심을 이 소년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 135)'

1980년 5월 살아남은 사람들의 자살률이 11퍼센트라고 한다. 광주 항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죽음과 싸우고 있다. 이들이 주고받는 말은 "죽지 마. 죽지 말아요."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p. 207)'

그 당시 광주에 있었던 군인이라면 이젠 진실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잘 살고 있다면 트라우마와 죽음에 맞서 아직도 싸우는 사람들과 비교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당신들 곁에 피 흘리며 쓰러진 사람을 업어 병원 앞에 내려놓고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던데. 사람을 맞히기 싫어 하늘을 향해 총은 쏘고 시신 앞에서 군가를 부를 때 입을 다물고 있던 군인들도 있었다던데.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그래야 하지 않은가. 편안해선 안되지 않는가? 깊숙이 감춰둔 양심을 꺼내야 하지 않을까?

끝내 양심을 버리고 국론 분열을 말하면서 이제 그만 광주는 잊고 미래로 가자고 말하는 부류에 서기로 했는가. 소년이 오고 있다. 당신에게로.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소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겠지만, 당신은 소년이 온다면 벌벌 떨 것이다. 언제까지 두려움을 감추고 태연한 척 허세를 부릴 텐가.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술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쉽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 192)'

소년이 오면 소년이 좋아하는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고 꽃이 핀 곳으로 이젠 우리가 소년을 데리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애도하며 장례도 치러야 하고. 언제까지 장례를 미뤄두며 작별하지 않을 텐가.


'114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도청 민원실 부탁합니다. 안내받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다시 기다렸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p. 69)'

초록이 가득한 오월이 오면 하루쯤은 다른 색깔을 떠올려야 한다. 하루쯤은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선 안된다. 1980년 오월 문명의 도시에서 핏빛 저항이 있을 때 재수 종합반 학원을 다니며 항쟁의 주체로 나서지 못했으니 오월이 올 때마다 하루만큼은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돌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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