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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중독 - 실패 혐오 시대의 마음
롤란드 파울센 지음, 배명자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4월
평점 :
과거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훨씬 살기 좋아졌다. 경제와 기술의 발전으로 식생활과 주거환경 그리고 건강관리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중세의 왕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고 한다.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아폴로 11호에 탑재한 컴퓨터보다 700배나 더 큰 메모리와 10만 배 더 좋은 성능을 갖춘 기계다.
그런데 왜 걱정과 불안은 늘어갈까? <걱정 중독>은 걱정과 불안이 어떻게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됐는지를 파헤치는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어떻게 미래, 원인과 결과, 위험과 재앙,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좇는다. (p. 14)'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얻어 소비하는 공동체에게 과거와 미래는 그들의 자아상과 세계관에 미미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까지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온 산족의 경우,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부모와 조상이 누구인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내다보는 미래도 불과 며칠에 불과하다. 오로지 '지금'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미래를 대비하는 건 불필요한 일이다. 그들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농업으로 지연된 소비가 가능해지면서 미래는 걱정거리가 됐다. 통제할 수 없는 날씨나 병충해를 대비하려면 지금보다는 미래에 주의를 더 기울여야 했다. 내년에 가뭄이 들면 어떡하지? 불안하다. 지금 발생하지 않았지만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가뭄을 상상하니 걱정이 생긴다.
'만약에... 이면, 어떡하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생각이다. 인지 연구에서는 이것을 반사실적 사고라고 부른다. (p. 76)'
'만약에 ... 이면, 어떡하지?'와 마찬가지로 후회에서 비롯되는 '만약에 ...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의 결과 역시 지금 벌어진 사실이 아닌 '반사실적 사고'이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걱정을 하며 살게 됐을까? 인류는 역사의 95퍼센트에 달하는 약 20만 년 동안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지 않고 잘 살았다. 먼 훗날을 내다보지 않았다. 시간관념은 인류에게 미래를 선물했다. 미래의 지평선을 끝없이 확장하는 상상력으로 미래 비전을 지어내어 걱정거리를 찾아냈다.
현대인에게 신비한 건 없다.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지식이 인류에게 있으니 걱정거리는 더 는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익숙하다 보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무실 밖으로 나길 일도 큰 걱정이다. 세상은 또 얼마나 위험해졌나. 머릿속도 복잡하다. 생각하며 생각할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만 든다. 게다가 남들이 나를 비정상으로 보는 것 같아 그것도 걱정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걱정 스위치를 끄려고 노력한다. 그럴수록 걱정거리가 더 머릿속에 가득해진다. 불안에서 벗어날수록 불안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걱정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방법은 걱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미래는 어차피 불확실하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가만히 앉아 비현실이 가득한 걱정을 그만두고 일어나서 행동해야 한다. 모든 힘은 행동에서 나온다.
'행동한다는 것은 재앙이 일어날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재앙이 일어날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 위험을 감수하든 회피하든, 재앙이 일어날 위험은 그대로다. 하지만 모든 재앙이 미래의 일은 아니다. (p. 401, 402)'
뉴욕의 건설노동자 가운데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모호크 인디언 부족은 유난히 고소공포증이 없는 줄 알았다. 모호크 족은 높은 곳에서 불안해하지 않았다. 마치 땅에서 걷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좁은 들보 위를 걸어 다녔다. 모호크 족이 '만약에 ... 이면, 어떡하지?를 생각하며 몸이 굳어버리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하루에 서너 번씩은 거의 떨어질 뻔합니다." 인터뷰에서 한 모호크 족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일해요. 나중에 누군가가 '아까 네가 아래로 떨어지는 줄 알았어'라고 말하면, 그제야 그 일이 떠오릅니다." (p.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