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집 구경하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연신 감탄하며 자신의 소망을 담기까지 한다. "오~ 저 집 좋은데? 저건 좀 아쉽다. 나 같으면 이렇게 꾸밀 텐데." 마지막 말에 부아가 난다."우린 언제 저런 집에 살아볼까?' 미안함도 슬쩍 마음 한편에 자리해 한마디 한다. "실제 살아보면 불편할 거야. 청소는 어떻게 할 건데. 저 높이 있는 전등은 누가 갈아. 벌레도 많을 것 같고... "'신 포도임 분명하다'라는 생각을 강요함으로써 아내가 잠시 꿈꾸는 상상의 세계를 단박에 박살 내버린다.<건축가가 지은 집>은 정성갑 건축가가 <행복이 가득한 집>의 칼럼 '건축가가 지은 집'에 연재된 집 가운데 여러 건축가와 건축주가 지은 집 스무 채의 이야기와 집과 건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묶은 '건축 탐구집'이다.'누군가를 만나 내가 꿈꾸는 걸 원 없이 이야기하고 그에 기반한 결과물을 총체적으로 제공받는 서비스는 집 짓기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일상을 직조하는 고도의 비스포크라고 할까요? (p. 6)'조병수 건축가는 몸이 좀 불편하더라도 잘 보고 잘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믿고 그런 것을 땅집에 채웠다. 김학중 건축가는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을 줄여 자연에 더 내주었다. 자연은 집주인에게 편안하고 느긋한 일상을 선물했다. 유경희 미술 평론가에게 집은 시적詩的이어야 했다. 그런 공간에서 책을 읽는 것이 그에게 최고의 사치이자 럭셔리다. 고경애 작가는 집에 가만히 않아 빛 좇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 햇볕과 바람이 꼭 있어야 했다. 정원이 있는 사람에게 4월은 손이 바쁘다. 그런 탓에 사업가 김상태·이애라 부부도 4월이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건축가가 세심하게 신경 써 지은 집에 살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이 달라진다. 시간의 질은 생활의 질, 마음의 질과도 같은 말이다. (p. 153)' 유주화 대표의 파주 집이 살면서 삶이 풍요로워지는 그런 곳이다. 즐겁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니 좋은 사람들이 곁으로 온다. 건축가에겐 "이런 공간은 꼭 필요해요"라는 말만큼이나 "이런 공간은 없어도 돼요"라고 과감히 뺄셈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사업가 유수현의 은평 한옥이 뺄셈의 미학이 완성된 곳이다. 꼭 머물고 싶은 곳, 그곳은 부티크 스테이라 할만한 이대규, 김우상 건축가가 오롯이 마음을 쏟아 지은 고성 '서로재'다.'공간과 시간은 서로 붙어 있어 한쪽이 행복하면 다른 한쪽도 덩달아 행복해지지요. 좋은 공간에서는 자동으로 좋은 시간이 만들어집니다. (p. 6)''건축가가 지은' '행복이 가득한 집', 남의 집을 돌아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이 있을까? 게다가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본다면 관심과 흥미가 더해질 테고 아내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게 될 것이다. 집이란 공간이 시간과 붙어있기에...집에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쌓인다. 시간도 쌓인다. 아내도 남의 집 구경을 하며 벽돌도 쌓고 이야기도 쌓고, 시간도 쌓아가며 마음속으로 집을 짓는다. 집 앞 마당을 가꾸듯 일상도 채워 넣는다. 그 집은 아내만의 특별함이 담겨있다. 그 집에 친구도 이웃도 놀러 온다. 아내가 가진 냄새와 색깔로 덧칠해가는 집. 그곳에서 아내는 남편의 '신 포도 이야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생의 한 챕터를 완성하고는 손가락에 침을 묻히고 그 챕터를 넘긴다.'집에 머물면서 거실과 마당에 쏟아지는 빛만 보고 있어도 행복이 차오른다는 분이 많았지요. 내게 꼭 맞는 집이 생기면 우리의 삶은 그렇게 소박해지고 단순해집니다. 다른 것 필요 없고 그저 집에서 누리는 소소한 기쁨과 행복이면 충분하다는 생각. 그러다 보면 더 이상 바깥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내 집에서 건강하고 가치있게 살 계획을 하게 되지요. 비로소 매 순간 온전히 나로 사는 챕터가 시작되는 겁니다. (p.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