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뒤에서
사라 델 주디체 지음, 박재연 옮김 / 바람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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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엘과 동생 에밀리 두 자매는 유태인 엄마와 비유태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야엘의 아빠를 '고이goy'라고 부르는데 '유태인이 아닌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엄마는 그 별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가 '고이'가 맞는데, 있는 그대로 부르는 게 왜 모욕적인 것인지 야엘은 의아했다.

'"어떤 단어가 나쁜 말인지 아닌지는 모두 말투와 맥락에 달려 있지. 모든 단어는 때때로 나쁘게 쓰일 수 있어. 심지어..." 나는 엄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을 나왔다. (p. 7)'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빠는 물론 두 손녀 보기를 꺼려 하는 듯해 보였다. 유태인 엄마와 결혼하는 아빠가 못마땅해 크게 다퉜다고 한다. 야엘은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0~1944년 남프랑스는 비시 정권이 통치했다. 유태인의 해외 탈출을 막지 않았고, 가슴에 노란 별을 다는 걸 금지하는 등 비시 정권은 다른 나치 점령지에 비해 유태인 탄압이 덜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수용소 상황이 매우 열악해 76,000명의 유태인들이 프랑스 정부 관할 수용소에 수감되었는데, 그중 어린이들의 숫자는 11,000명에 이르렀고,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2,500명에 불과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말할 때 끼어드는 게 아니라면서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여성의 권리, 성매매 금지, 교육의 권리, 평화에 대해... 그런가 하면 누구는 유태인을 욕하고 누구는 옹호하고, 히틀러를 미친놈이라고 하는가 하면 또 똑똑한 사람인데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하고.

아빠가 엄마가 죽기 전 커튼 뒤에서 금발 여자 오펠리와 은밀하게 키스하듯,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감추는 동안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들이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유태인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유태인이라는 정체성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열세 살 야엘에게 초경이 찾아오듯 성장해 나간다.


아빠는 유태인이 아니었지만 야엘은 항상 마음 깊은 곳부터 유태인이라 여겼다. 유대교 전통을 아이들에 전해주는 건 엄마들이라고 엄마는 말했고, 비록 유대교 회당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엄마가 가르쳐 준 셰마 기도문을 술술 외우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유태인이 아니었던 야엘과 동생은 '유대교를 믿거나 증조부모 중 두 명이 유태인'인 사람을 유태인으로 규정하는 두 번째 법령이 발표되면서 유태인이 됐다. 지금 두 자매는 유태인을 색출하기 위해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관을 피해 커튼 뒤에 숨어있다.

'지금 나는 커튼 뒤에 있다.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프티 아줌마도 믿고 있지 않을 거다. 내가 에밀리에게 엄마는 돌아가시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거겠지. 사람들은 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수록, 희한하게도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처럼 행동하는 걸까? (p. 116)'

몇 년 전 아빠와 새엄마 오펠리가 숨어있던 곳, 아이들을 피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의 세계였던 곳, 커튼 뒤에 이제 야엘이 동생 에밀리의 손을 잡고 거꾸로 비밀의 대상이 되어 떨며 숨어있다. 야엘은 죽음을 생각한다. 죽은 엄마를 볼 수 있다는 생각, 한편으론 죽으면 아빠도 프티 아줌마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든 살아있는 가족을 볼 수 없다는 생각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은 대부분 커튼 뒤에서 시작되고, 커튼 뒤에서 끝났다. (p. 3)'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떠오른다.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갑자기 커튼이 열린다. (p.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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