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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 - 여자의 죽음으로 사랑을 다시 읽는다 ㅣ 허사이트 시선 총서 3
윤단우 지음 / 허사이트 / 2024년 1월
평점 :
'결국 이 책에서 내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사랑은 왜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p. 1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윤단우가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열다섯 편을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읽는 작업이다. 고전의 서사 구조에서 여성의 '아름다움'과 '사랑'은 왜 꼭 '죽음'으로 완성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여성과 죽음 사이에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햄릿>의 오필리어, <지젤>의 지젤, <마농 레스코>의 마농, <춘희>의 마르그리트, 그리고 <제인 에어>의 버사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앙투아네트는 정신이 나가 미치거나 병들어 죽는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안나, <보바리 부인>의 엠마,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은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한다.
<오셀로>의 데스데모나, <카르멘>의 카르멘, <크로이체르 소나타>의 아내는 남자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남성 집단이 한 여성을 죽인 사례도 다루는데 실존 인물인 마타하리다. 반면 남자를 죽이는 여자도 있다. <물의 요정 운디네>의 운디네, <살로메>의 살로메, <메데이아>와 <메데이아, 악녀를 위한 변명>의 메데이아가 그 경우다.
마음먹고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키워드 떠올린 체 고전을 읽지 않는 한 이런 분류를 하기란 쉽진 않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우리의 철학은 남성 중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 '나는 아름다움을 위해서 죽었답니다' 전문을 소개하면서 말하듯, 성별에 드러난 가치는 아름다움을 위한 죽음이 여성이라면, 남성의 죽음은 진리를 위해서다. 그러니 희생이 뒤따르는 사랑이라면 이를 짊어져하는 건 여성의 몫이다. 사랑은 진리이기보다는 아름다움에 가까우니 말이다.
참아야 하는 경우라면 누가 참아야 하나. 여성? 남성? 물론 인내가 성별에 관계없는 가치이긴 하지만 여성화되기 일쑤다. 양보해야 한다면? 희생해야 한다면? 비폭력은? 전쟁과 상대적인 평화는? 이런 가치를 수행하는 여성은 아름답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난이 쏟아지거나 처벌받기까지 한다.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이렇게 대입해 보면 확실해진다. 가정을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여성과 남성 가운데 누가 인내하고, 양보하고, 희생하고, 비폭력으로 맞서야 하나 (또는 맞서 왔는가). 평화가 깨진다면 누구에게 책임이 전가되는가 (또는 전가되어 왔는가).
결국 사랑의 불멸을 만들기 위해서 인내, 양보, 비폭력, 죽기까지 희생해야 하는 존재는 여성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라는 명제가 또렷해진다.
저자가 꼽은 열다섯 편의 문학은 대체로 영화나 연극, 오페라, 발레로 옮겨가며 재창작되는 작품이다. 저자에 따르면 연출가가 작품을 새롭게 만드는 '레지 테아터(Regie-Theater)' 형식이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죽은 여자들을 만나온 우리에게는 이제 살아남은 여자들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p. 328)'
물론 전에도 재해석한 작품이 있다. 이 책에서는 두 작품을 한 꼭지씩 다뤄 소개한다.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제인 에어>의 프리퀄 성격의 작품으로 브론테가 지워버린 앙투아네트에게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를 부여한다. 리스의 앙투아네트는 비폭력이 아닌 공격성을 나타낸다.
크리스타 볼프는 <메데니아, 악녀를 위한 변명>에서 메데이아의 악녀 이미지에 반기를 들며 메데이아 입장에서 새롭게 스토리를 재구성한다. 볼프의 소설에서 메데이아에게 씐 모든 죄악은 조작된 것이다.
저자는 재창작의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포커스를 두고 있는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 역시 원작을 핑계 대며 죽은 여자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 더 진보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도 그 발걸음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을 것이다. (p. 330)'
그리고 이 책의 효용성과 함께 바람도 어필한다. 고전 작품을 '여성이라는 렌즈'로 다시 읽어보기를. 그러면 그 작품 속에서 또 다른 스토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