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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몸 - 가장 인간적인 몸을 향한 놀라운 여정
김성규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3년 10월
평점 :
''동물계 척삭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직비원아목 원숭이하목 호미니드과 호모속 호모 사피엔스종'. 한 호흡에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길고 긴 이 명칭이 호모 사피엔스를 가장 정확하게 분류하는 방식입니다. (p. 14)'
인간은 움직이는 생물이니 '동물계'에 속한다. 척삭이 척추가 되는 '척삭동물문'이며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포유강'이다. 원숭이처럼 곧게 뻗은 코를 갖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각 5개에 손발톱이 있는 원숭이나 침팬지의 여러 신체적 특징이 있어 세 가지 '목'을 함께 지닌다. 두 발로 걷고 꼬리가 없어 '호미니드과'이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나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ensis 같이 '호모속'이고 이들보다 지성이 뛰어나 '호모 사피엔스'로 인간을 분류한다.
이렇듯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는 틀도 구분하는 건 지능이 아닌 대부분 몸의 생김새이다. 즉 몸은 우리를 인간답게 구분하는 중요한 매개이자 대상이다.
인간이 가진 악의 심리를 다룬 <인간의 악에게 묻는다>에 이은 김성규 교수의 두 번째 책 <사피엔스의 몸>은 몸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이제까지 몸을 다룬 책이 대부분 건강 또는 물리적으로 가지고 있는 몸에 특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 책은 그것과 다르게 열세 가지 주제를 통해 몸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다룬다. 그리고 각 주제마다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의 사례를 들어 몸에 대한 문화와 이야기에 접근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하얀 피부를 갖는 것과 목숨을 바꿀 만큼 피부에 대한 욕망이 지나쳤다. 에르제베트는 처녀의 피로 목욕하는 것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이라 믿어 1,500명에 달하는 처녀와 어린 여자아이를 살해했다. 우리는 왜 이토록 몸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할까? 성형을 하면서까지 말이다.
저자는 두 가지로 동기를 설명한다. 아름답게 연출함으로써 자신감을 획득하려는 의지, 또 하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상대방의 예의라는 생각에서 나타나는 동기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진정한 아름다운 몸은 생김새보다는 올바른 몸가짐과 자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운 교수는 금속활자보다 더 뛰어난 발명으로 마우스를 꼽았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마우스의 잠재력을 극대화해 컴퓨터 환경에 큰 변화를 일으켰고 이어서 스마트폰으로 또 한 번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마우스에 의해 움직이는 화면 속 커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손을 화면에 밀착시키는, 즉 몸을 대상에 밀착하는 행위로 명령하는 시스템을 생각해냈다.
'즉, 디지털 세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할수록 그에 비례해 손을 제외한 현실의 몸은 둔하고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디지털 세계를 매우 활발하게 활보하지만 현실의 움직임은 최소화되는 몸의 괴리가 발생한 겁니다. (p. 261)'
저자는 2008년 개봉한 영화 <월-E>를 사례로 편리함이 인간의 몸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편하게 살긴 하지만 몸과 정신이 지닌 강인함을 빼앗기고 삶마저 잃게 된다.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인간이 삶을 꾸리고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생존을 원하는가? 삶을 원하는가.
마지막으로 살펴보는 주제는 '인간은 앞으로 어떤 몸을 갖게 될까'이다. 우리 몸에 고장 난 부분을 이식하거나 교체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가까운 미래에 스마트 피부에 인공 장기, 최고의 효율을 갖춘 메타 브레인까지 갖춰 질병과 죽음을 극복한 포스트휴먼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학자들은 예고한다.
우리 몸의 고유성 모두를 인공으로 대체된 포스트휴먼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할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 말처럼 우리는 포스트휴먼에게 자리를 내주고 멸종에 들어설 수도 있다. 또 하나, 영화 <알리타: 베틀 엔젤>에서 묘사된 것처럼 몸을 갖고 붉은 피를 흘리지만 냉혹한 사고를 하는 존재와 기계화된 몸을 갖고 파란 피를 흘리지만 온정적 사고를 하는 존재 가운데 누가 더 인간적인 존재일까 하는 물음이다.
철학을 일상적 삶으로부터 강요된 탈출이라고들 한다. 정해 놓은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며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말이다. 김성규 교수의 <사피엔스의 몸>이야말로 몸에 대한 기준에 의문을 품게 해 철학적 사고로 인도하는 책이다.
'모든 생명체의 몸은 내 몸만큼이나 아름답고 귀하게 여기고 보듬어야 할 고운 몸이라고, 우리는 같은 뿌리를 가진 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p. 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