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바레리뇽 고원 - 선함의 뿌리를 찾아서
매기 팩슨 지음, 김하현 옮김 / 생각의힘 / 2023년 12월
평점 :
"나는 권한이 거의 없는 배달부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크건 작건 히틀러나 상급자의 지시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고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 대량학살에 관여한 것이 아니라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의 항변이다.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아이히만은 6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의 총책임자였다.
"독립에 대한 희망이 있어도 만세만 외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일제강점기에 그 누구보다 친일에 앞장섰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완용의 말이다. 자녀들에게 이런 유언도 했다. "앞으로 미국이 강대국이 될 거니, 너희들은 친미파가 되어라"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앞잡이였던 자들 또는 후손들은 이런 말로 스스로 합리화한다. "당신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같이 살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상황이 안 좋을 때 선하게 행동한 공동체가 있나? 나는 기억을 연구하면서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저항한 사례를 조사했다. (p. 17)'
프랑스 중남부 자그마한 고원, 비바레리뇽 Vivarais-Lignon에 선한 공동체가 있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나치에게 쫓기는 낯선 수많은 난민을 수용했다. 이들을 집에 받아들인 주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늘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있었고 나치에게 끌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확실히 다니엘은 태어날 때부터 좋고 옳은 삶을 살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어린 시절이 끝나가면서 다니엘이 자기 자신, 그리고 참나무처럼 탄탄한 자기 삶의 조건과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음이 편지와 가족들의 회상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떻게 할까? 어떤 사람이 될까? 결정을 내려야 했다. (p. 43)'
다니엘 트로크메, 비바레리뇽을 찾아온 난민의 어린이를 위한 보호소 '레 그리용'을 관리했고, 그 아이들은 무척이나 사랑했다.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아이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여전했다.
인류학자 매기 팩슨의 <비바레리뇽 고원>은 비바레리뇽 주민들이 보여준 환대와 사랑의 기록이다. 무엇이 목숨을 걸고 타인을 지키는 선함을 가능케 하는 것일까? 그 친절함의 뿌리를 탐구하기 위한 비바레리뇽 여정에서 저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려준다.
누가 누구와 무엇을 하는가?
아이히만은 나치와 유대인을 학살했다. 이완용은 힘센 일본에 아부해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섰다. 비바레리뇽 주민들과 다니엘은 난민들을 보호해 그들의 목숨을 살려줬다.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한 모험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이히만과 이완용은 이들과 아주 다른 선택을 했다.
비바레리뇽 고원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맞섰다. 올바른 일이 벌어지리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원을 그려 편을 가르지 않았다.
'아뇨, 저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아뇨, 저는 독일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논리를 따르는 대답을 내놓았다.
저는 유대인이 아니라 한 소년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연약한 유대인이 아니라 연약한 소년을, 보호가 필요한 소년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p. 293)'
누가 누구와 무엇을 하는가?
다니엘과 비바레리뇽 고원의 사람들은 사랑을 추구했고, 시도했고, 매 순간 실천했다. 그 사랑이 습관이 되도록. 하지만 아이히만과 이완용에게는 사랑이 없었다. 올바른 일에 대한 믿음은 더더욱 없었다.
'다니엘은 작은 귀뚜라미들을 사랑했다. 동료 수감자들을 사랑했다. 미치도록 사랑했고, 과도하게 사랑했다. 고원의 주민들은 밤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을 때 문 뒤에 누가, 또는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했음에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상드린은 학생들을 사랑했다. 비록 그 사랑이 언젠가 한 학생이 입학해 다른 학생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일지라도. (p. 510)'
'악의 평범성'에 사랑이 없었다면, 목숨을 걸고 타인을 지키는 선함에는 사랑이 있었다. 모든 걸 바꾸어 놓기 때문에 사랑은 아름답고 반드시 필요하다. 사랑은 밤하늘을 환하게 밝힌다. 신성한 인간을 없다. 인간이 사랑함으로써 신성해진다. 다니엘 트로크메와 비바레리뇽 사람들처럼. 신성한 곳도 없다. 사랑의 행위가 모인 곳이 신성해진다. 비바레리뇽 고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