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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괜찮아 - 어느 실직 가장의 마라톤 도전기
김완식 지음 / 훈훈 / 2023년 11월
평점 :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걸까? 괜찮아서 괜찮다는 걸까? 괜찮다고 말해도 되는 물음이었나? 맞는 대답을 한 건가? 무슨 생각으로 괜찮다는 걸까?
실직 가장 김완식의 마라톤 도전기에 내 감정을 몰입해 읽게 되는 건 공통점이 많아서다. 가장이고, 남편이고, 아빠여서다. 동기는 다르지만 실직도 같다. 저자는 자신의 의지로, 나는 나갈 때가 돼서 직장을 나왔다. 그리고 '괜찮다'라는 말을 하는 것도 그렇다.
'괜찮다'라는 말이 입버릇일 수도 있다. 아니면 마땅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편하게 갖다가 대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처지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도 많이 쓰는 말이긴 한데 아빠들이 유독 많이 하는 말이다. '괜찮아~'
많이 피곤할 텐데 회사 갈 수 있겠어? '괜찮아~'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괜찮아~'
직장 상사인데 명절에 찾아가 봐야 하는 거 아냐? '괜찮아~'
이거 갖고 충분해? '괜찮아~'
아이들 독립도 시켜야 하고 양가 부모님 병원비도 만만찮을 거 같은데...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하지? '괜찮을 거야~'
'내려놓은 빈 공간에 대신 자리한 것은 미안함이었다. 퇴직 이후의 모습은 무력했다. 중년의 퇴직자에게 세상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아빠로서 뭐라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것이 달리기가 될 줄은 몰랐다.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삶이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달리면서 느꼈다. (p. 8)'
퇴직 후 며칠은 편했다. 하지만 잠시였다. 거실 소파, 식탁 의자, 침대... 그동안 퇴근 후 내가 머물던 곳들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차지하고 있을 때의 그 익숙함이 사라졌다. 눈치 주지도 않는데 가족에게 눈치가 보였다. 뭐하나 필요해서 찾으면 찾질 못했다. 갑자기 남에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들과 대화도, 길어진 아내와 같이 있는 시간도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아내도 어색해하는 듯했다. 멈춰 있을 수 없는 분위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어떤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이들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게 하는 질문이었다. (p. 62)'
아빠의 모습. 엄마 뒤에 서있는 아빠의 모습. 아이들은 항상 아빠를 엄마 어깨너머로 본다고 한다. 아빠의 한 부분만 보는 셈이다. 아빠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아빠 또한 아이들을 엄마 뒤에서 어깨너머로 본다. 엄마에게 반응하는 아이들의 모습만 보는 셈이다. 보는 이에게 아빠의 모습은 항상 불완전하다.
'아빠로서 뭐라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것이 달리기가 될 줄은 몰랐다.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삶이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달리면서 느꼈다. (pp. 8,9)'
저자는 마라톤을 선택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들 한다기에 아빠의 인생을 마라톤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자기만의 속도로 달려야 하는, 당장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해서는 안 되는, 순간의 기쁨을 만끽해서도 안되고, 포기하지 말아야 완주할 수 있는, 힘겨운 자기와 싸움인 마라톤, 아니 인생. 저자는 이러한 아빠의 인생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2월 15일부터 시작해 11월 6일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기 위해 저자가 연습하는 과정을 읽으며, 군 훈련병 시절 16킬로미터 구보를 한 경험이 떠올랐다. 천천히 뛰다가 호루라기를 두 번 불면 빨리 뛰고 다시 호루라기를 한 번 불면 천천히 뛰고를 반복하는 구보였다. 죽을 맛이었다.
'공식 기록 6시간 24분. 아침 9시부터 달리기 시작해서 오후 3시가 넘는 시간까지 달렸다. 정말 믿기지 않았다. 내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사실도, 6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달렸다는 것도, 어떻게 그렇게 달릴 수 있었을까? (p. 192)'
나에게 이런 유사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저자의 풀코스 마라톤 완주를 고스란히 느낄 수는 없다. 저자의 인생과 나의 인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제각각 다른 이유로 출발선에 선다. 그리고 서로 다른 템포로 달린다. 달리는 계획부터 다르고 완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다르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건 같다.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리는 것도 같다. 모든 아빠들이 달리기로 결심하게 된 용기도 똑같이 갖고 있다. 그리고 모든 아빠들은 "괜찮아~"라고 말한다.
"책 제목을 보고 가슴이 아려왔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자식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모습을 어느 부모인들 보고 싶을까? 못 해줘서 미안하고 잘 자라줘서 고마울 뿐이다. 어미의 부족한 기도가 아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 란다. 막내야, 사랑한다." (p. 7, 사랑하는 어머니 윤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