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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명품이 되는 순간
최경원 지음 / 더블북 / 2023년 9월
평점 :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는 조그마한 도시였지만 철광산이 있어 활황을 누렸다. 하지만 철광을 다 캐내자 많은 사람들이 떠나 도시는 텅 비어갔다. 그런 도시를 다시 살려낸 것은 다름 아닌 건축물이었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유형으로 프랑크 게리가 디자인한 구겐하임미술관이었다.
건축물 하나가 가져온 강력한 사회 경제적 효과는 널리 알려졌고, 그 이후 도시마다 그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구겐하임미술관, 즉 프랑크 게리의 희한한 아이디어는 건축의 역사가 되었다.
'1,000켤레 한정 생산으로 만들어진 이 신을 신으면 스프링 모양의 신발 몸체가 발을 인체공학적으로 감싸며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일상적으로 신는 신발까지 이렇게 획기적인 모양으로 디자인한 솜씨는 건축가를 뛰어넘어 해탈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 혹은 도인의 면모까지 풍긴다. (p. 227)'
자하 하디드가 라코스테 요청에 따라 디자인한 '라코스테 부츠'는 디자이너들에게 상상의 한계가 있기나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다.
'훌륭한 음악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천만 관객의 영화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듯,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창조한 디자인들이 심오한 인문학적 가치로 대중들에게 아름다움을 즐기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삶에 대해서 근본적인 사색을 하게 만든다. (p. 5)'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최경원 교수의 <일상이 명품이 되는 순간>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디자이너들이 어떤 디자인을 창조하고 그 디자인은 우리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는지, 그리고 어떻게 세계 문화를 변화시키는지 디자인의 흐름을 알려준다.
우리가 사는 공간, 사용하는 물건, 입는 옷 등 주변에서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본다. 우리가 감탄하는 것은 대부분 피상적인데 실용성을 중심으로 한 아이디어의 쓰임새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 이들 디자이너들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가 하면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작품에서 예술작품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고 즐거움에 감동까지 하게 된다.
'조명으로서 해야 할 일에서도 모자람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디자인 바깥으로 몰아낼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조명은 상식적인 조명들이 하지 못하는 기능까지 더하고 있다. 이 조명의 파격적인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줌과 동시에 높은 파고의 감동에 휩싸이게 만든다. 미학에서 말하는 예술적 감흥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pp. 233, 234)'
잉고 마우러의 조명 디자인 <포르카 미세리아>는 페기물인 깨진 접시 조각들로 재활용 수준을 넘는 속성이 다른 존재의 조명으로 재탄생 시킨 결과이다. 조명으로서의 기능을 물론 심미적 거리감도 느낄 수 없는 순수 예술품이나 다름없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이제까지 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내는 디자인을 너무 상업적으로 한정해 생산활동으로 규정했고, 순수미술과 구분 지으려 했으며 그래서 가치를 부여하는데 너무 인색했다는 반성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낡은 해석을 지워버리고 디자인이 얼마나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를 작품으로 보여준 디자이너 스무 명의 이야기를 <일상이 명품이 되는 순간>에서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