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닮았다 -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유전학 연대기 사이언스 클래식 39
칼 짐머 지음, 이민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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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튜브에서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손주의 귀가 자신의 귀를 닮았다며 좋아하면서도 쑥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랑 같아 거북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심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최 교수님의 손주는 '웃음이 아니라 귀가 닮았다'.

'유전은 우리의 생물학적 과거를 통해 우리를 정의하며, 이것을 미래 세대로 이어감으로써 우리에게 불멸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p. 16)'

아이가 태어나면 발가락이라도 닮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살펴본다. 나도 그랬다. 아이에게서 내 DNA를 찾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웃음의 이유가 많겠지만 그중에 하나, 내게서 아이에게 또 그 아이의 아이에게 전해질 안도도 포함된다. 나쁜 DNA가 아닐 때 말이다. 나쁜 유전자라면 애써 안도 대신 미안함 때문에 외면하려 한다. 남 탓으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 칼 짐머도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딸아이 샬럿이 태어날 때 이야기를 소개한다. 유전 상담사와 만나기 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유전자, 자신과 아내의 DNA가 태어날 아이에게 어떻게 결합하여 나타날지 불안해한다. 자신과 아내의 가계도를 살펴보기도 하고 DNA 검사를 받기도 한다. 다행히 태어난 딸아이에게서 어떤 유전 질환도 나타나지 않았다.

'샬럿에게서 아기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랬다. (p. 15 프롤로그)' 웃음이 닮았다.


칼 짐머의 <웃음이 닮았다>는 유전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유전으로 인해 빚어진 우생학, 인종주의, 성차별 등 역사 이야기를 여러 개의 짤막한 픽션처럼 구성했다. 재미있는 문학과 같은 과학 책이다.

'이 부자의 주걱턱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해부학자들은 이 같은 외모의 특성에 이 왕조의 이름을 붙여 '합스부르크 턱(Habsburg jaw)'이라고 불렀다. (p. 23)'

1장에 첫 번째 등장하는 픽션 같은 논픽션은 합스부르크 왕조 스토리다. 합스부르크 가는 유전자를 오염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왕족 혈통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 근친을 했다. 그 결과는 그토록 바라던 고귀한 유전자 대신 아래턱이 돌출해 씹을 수없을 정도의 주걱턱을 비롯해 천식, 발작과 같은 유전질환이 나타났다. 불행하게도 그 당시 사람들은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주걱턱이 아버지에게서 상속된 것임을 알지 못했다.

1800년 대에 들어서서야 유전의 개념을 과학적 물음으로 삼기 시작했다. 찰스 로버트 다윈 Charles Robert Darwin을 시작으로 유전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인류가 유전의 수수께끼를 언제부터 캐기 시작했는지 과거로 시간 여행(2장), 우생학의 실험장이 된 비극(3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위적 유전자 조작에 따라 인류가 직면한 윤리적 딜레마(19장)까지.

유전과 연관된 폭넓은 주제를 다루기 위한 조사와 연구 그리고 책에 들어간 엄청난 정보를 감안할 때 인류의 서사를 담은 <사피엔스>에 필적할 만한 유전의 서사를 담은 책이다. 소장해 두고두고 읽어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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