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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ㅣ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비주얼 / 블랙피쉬 / 2023년 4월
평점 :
어린 시절 조미료라는 말은 없었다. 미원, 미원이 조미료의 대명사였다. 미원 어디다 뒀더라? 미원 더 넣을까?... 신제품 미풍은 조미료 시장에 뛰어들기 전에 사람들의 말 습관을 어떻게 바꿀지를 먼저 생각했을 텐데, 그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풍의 copy는 '조미료는 미풍이에요'였다. 여기저기 CM송이 울려 퍼졌다. "조미료는~♬♪미풍이에요~♪♬♪". 결과는 2세대 조미료 미풍의 완승이었다.
2017년을 대표한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였다. 이 copy를 읽으며 사람들은 온갖 생각을 했다. 그래 권력이 먼저였지, 돈이 먼저였지, 주먹이 먼저였지... 생각해 보니 사람이 먼저였던 적은 없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지도자가 필요한 때가 왔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 copy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카피책>의 저자 정철이다.
35년 차 카피라이터, 광고쟁이, 발상 전환의 대명사...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 정철은 말한다. '쓰십시오. 쓰지 않으면 잘 쓸 수 없습니다. (p. 5)' 그리고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라고.
카피를 써서 평생 밥 먹고, 술도 먹고, 책도 사고... 모든 걸 할 수 있어서 '카피'는 그의 인생에 가장 고마운 두 글자라고 고백한다. <카피책>은 카피라이터 정철 인생의 압축이며, 그만의 32가지 카피 노하우를 꾹꾹 눌어 담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카피라이팅 책이다.
'copy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지만
관심은 침몰하고 있는 건 아닌지 (p. 113)'
시력표의 나비와 비행기 대신 배로, 숫자도 4와 16을 넣었다. 글자가 아래로 갈수록 작아져 희미해지듯 우리 기억도 희미해지는 건 아니냐며 묻는 [세월호 시력표] 포스터에 붙인 copy다.
'copy 영어에 풍덩! (p. 171)'
의성어가 더해지니 지겨운 공부가 놀이가 된다.
'copy 술맛의 10%는 술을 빚은 사람입니다
나머지 90%는 마주 앉은 사람입니다 (p. 188)'
술이라는 상품은 10% 밖에 보이지 않고, 마주 앉은 사람이 크게 보여 인간적이다.
'copy 보람이가 10분만 보이지 않아도
덜컥 겁이 나지 않으세요? (p. 260)'
이 정도 겁은 줘도 괜찮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어린이의 안전이다.
'선생님은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한 후 [흔들어 주세요]라는 카피를 세상에 던집니다. 디메리트를 메리트로 바꿔 얘기한 이 카피 한 줄에 시장은 반응했고 해태는 전설적인 브랜드 하나를 얻습니다. (p. 297)'
과일 향만 풍기는 음료와 다르게 천연 과즙을 넣었는데 가라앉은 부유물로 소비자 반응이 싸늘했다. [흔들어 주세요] 써니텐, 굳게 닫힌 문을 확 열어젖히는 카타르시스까지 주는 copy다.
재치가 번뜩이는 copy는 영감을 준다. 패러다임을 바꿔주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이어나가게 해 사고의 폭도 넓혀준다. 호수의 물결처럼 잔잔한 감동도 주고 심심한 세상을 위트로 가득 채운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글쓰기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팁도 쥐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