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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vs 보부아르 ㅣ 세창프레너미 11
변광배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사르트르 연구자임을 자처하는 변광배 교수의 <사르트르 VS 보부아르>는 세창프레너미 시리즈의 열한 번째 작품이다. 프레너미(Friend + Enemy)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대에게 영향을 주며 자신을 성장시켜 온 대가들을 비교 대조하여 이해를 극대화하는 시리즈이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작가, 지식인으로 알려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하지만 이 둘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역시 '계약결혼'이다. 실존주의는 공통분모다. 그리고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계약결혼을 유지하며 같은 곳에 묻힌 영원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들에게서 프레너미의 컨셉인 차이점이나 대립점을 찾는 일이 그리 쉬어 보이진 않는다.
이 두 인물의 첫 번째 이야기는 사랑이 싹트는 배경, 동기, 과정이다.
여느 커플처럼 이 둘의 만남도 운명적이었다. 보부아르 부모의 반대가 있었고,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몰래 만나 사랑을 싹 틔우는 과정도 있었다. 계약조건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우연적인 사랑을 허락하는 데 동의했고, 서로 모든 것을 말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독립채산제를 실시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로 계약결혼도 계약조건도 모두 파격적이었다
게약결혼은 당시 불가능했다. 불가능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이 둘의 계약결혼에 놓여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계약결혼의 근본적인 어려움은 사람들의 비판보다는 이 둘이 부여한 철학적 의미였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두 주체성의 결합을 의미하는 계약조건, 사랑과 언어의 필연적인 결과로 실패가 예상됐지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 불가능을 방치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도전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같은 듯 다른 실존주의에 대한 사유다.
신은 완전하다. 그래서 인간의 세계에 무관심해야 한다. 관여한다면 완전성이 아닌 신의 결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자유는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존재로 증명된다. 신이 존재해 섭리가 있고 인간이 섭리를 따라야 한다면 인간의 자유는 존재하는 건가. 신과 인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공통된 이념 체계다.
사르트르는 '나'와 '타자'의 관계에서 '대립과 갈등'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 반면, 보부아르의 인간관계는 '상생과 화해'이다. 둘은 대립한다. 더 나아가 보부아르는 공동 존재의 실현 가능성까지 제시하는 애매성의 윤리로 고유의 사유의 뜰을 형성하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주목하는 것은 현실 참여에서의 둘의 차이다.
보부아르가 여성 해방, 노인문제, 어린아이 문제 등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를 통한 사회의 변혁을 겨냥한 미시적 성격의 참여를 했다면, 사르트르는 마르크스주의를 배경으로 계급투쟁에 입각한 사회 전체의 변혁을 겨냥하는 거시적 참여를 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이 두 사상가가 낯설고 공부도 부족해 책을 읽는데 머리가 지끈거려 애먹었다. 뚜렷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실존주의의 흐릿한 윤곽은 그릴 수 있어 뿌듯하다. 몇 번 더 읽으면 어디 가서 소리 높일 정도는 아니고 소곤소곤 떠들 정도는 될 듯싶다. 그리고 이 둘의 문학작품에 호기심이 생긴 건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