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의 라틴어 산책 - 뿌리가 되는 언어 공부
한동일 지음 / 언어평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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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동일은 <지적이고 아름다운 라틴어 수업>에서 라틴어의 고상함을 문화적, 언어적 뛰어남에서 찾지 않았다. 대신 위아래를 구분 짓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라틴어의 '수평적 사고의 틀'을 내세웠다. 이 틀에서 비롯되는 '올바른 소통'이 라틴어의 고상함이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서울대(VERITAS LVX MEA, 진리는 나의 빛) 등 세계 수많은 대학에서 라틴어로 모토를 삼는 걸 보면, 왠지 라틴어가 고상하고 품격을 갖춘 느낌이 막연하게 든다. 'CARPE DIEM', 'VENI, VIDI, VICI', 'MEMENTO MORI' 라틴어 명언도 멋지게 보이고, EQUUS, VOLVO, AUDI 브랜드도 고급스럽다.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프로방스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루마니아어, 카탈루냐어, 스위스 라틴어 사용권, 사르데냐 방언 등 숱한 언어가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에서 어원을 따지다 보면 마지막에 라틴어가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유다. 라틴어는 이전에 거의 모든 학자들의 언어였다.


한동일 교수의 강의와 사유를 담은 <라틴어 수업>에서 이미 매력에 흠뻑 빠진 터라 기대를 갖고 <한동일의 라틴어 산책> 책장을 넘겼다. 아뿔싸 라틴어에 작은 호기심을 가진 이들을 위한 문법책이라 할만한 라틴어 초급 교재다. 책 뒤편에 120쪽 분량의 연습문제도 있다.

'그렇다면 라틴어에 일정한 어순이 없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라틴어가 다양하고 정확한 격과 인칭에 따른 어미변화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지시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어순이 바뀌어도 의미 전달에 큰 문제가 없다. (p. 67)'

명사의 어미변화들, 각 동사의 활용마다 대략 160개 이상의 변화무쌍한 동사 활용이 라틴어를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라틴어는 변형의 가짓수가 많고 복잡하기는 하지만 아주 명확한 규칙을 따른다. 그 점이 바로 라틴어의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라틴어의 특징이 평범한 두뇌를 비범한 두뇌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힘든 공부를 한 사람에게 더 어려운 공부가 뭐가 있겠는가? (p. 73)'


라틴어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함께 하는 라틴어 이야기'로 강의로 시작한다는 점은 (나에게) 다행이었다.

'진리에 복종하라 Oboedire Veritati'. 우리말에는 없는 능동 명령과 수동 명령이 라틴어에는 있다고 한다. '복종하라 Oboedire'가 능동 명령이 아닌 수동 명령인데

'수동 명령을 사용하는 것은 진리는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지, 외부의 힘에 의해 고개를 숙이는 건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강압에 못 이겨 순종하는 진리는 이미 진리가 아니라는 의미인데 우리말은 라틴어의 이 미묘한 구분과 차이를 나타내지 못하고 "진리에 복종하라"라는 말로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p. 181)'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라는 뜻의 라틴어 'EGO SUM OPERARIUS STUDENS.'에서 실패를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라틴어라든지 뭐 다른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 좌절을 맛보고 비관하기 쉬운데, 비관하는 이유가 '실패한 나'가 '나'의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동일 교수는 말한다.

'그러나 이건 자기 자신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자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번의 실패는 나의 수많은 부분들 중 하나일 뿐, 그것 때문에 쉽게 좌절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것이다. 우리는 실패했을 때 또 다른 '나'의 여집합들의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여집합들이 잘 해낼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가능성들을 생각하고 나아가는 것이 겸손한 자세가 아닐까? (p. 217)'


라틴어는 어느 나라도 모국어로 삼지 않는 죽은 언어다. 하지만 라틴어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 쉬며 그 매력을 뽐낸다. 학교의 모토로, 명언으로, 브랜드로, 사람 이름으로...

뿐만 아니라 너무 오래전에 쓰임을 다한 언어라 자료도 부족해 익히기에 어려움을 겪지만 라틴어를 배우려고 한다. 라틴어에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평적 사고의 틀에서 비롯된 올바른 소통이라는 라틴어의 고상함이 그 가치가 아닐까? '수평적 사고의 틀'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이다.

'그래서 언어학습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뿐 아니라 깊은 사유의 수단이 되고, 그러한 사유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미래, 다음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p. 2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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