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홈 The Home - 멋진 집은 모두 주인을 닮았다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살고, 모든 가족은 각자의 집에 산다. 말하자면 사람이 모두 특별한 존재이듯 모든 집은 특별한 집들이다. (...) 집이란 지금 살고 있는 구체적인 장소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담아 줄 어떤 포근한 도피처나 안식처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집을 잘 안다. 그러나 또한 집을 잘 모른다. (p. 5)'

TV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사부로 정재승 교수가 출연했다. 책으로 둘러싸인 배경을 보며 세트를 잘 꾸몄다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말이 정재승의 교수의 서재란다. 이 책에서 첫 번째로 '뇌공학자 정재승의 책으로 지은 집'을 소개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집, '파이아키아'에 2만여 권을 소장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서재 이후 두 번째로 부러워 한 서재였다.

'집의 관전 포인트는 단연 서재다. 책이 주인공인 공간인 만큼 가구를 최소화하고 (...) 책으로 가득한 공간이지만 사실 책은 영감과 통찰을 주는 하나의 도구일 뿐, 목표나 목적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생각'이죠. (...) 바로 깨어 있는 정신으로 필요한 일에 몰입하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입니다." (p. 15)'

이사할 때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이 흩어져 있는 책 2만여 권을 어떻게 모으느냐였다고 한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는 생각할 기회를 주는 공간이고, 영감과 통찰의 실마리가 가득한 곳이다. 그리고 책 읽은 이들이 꿈꾸는...
'가끔 책을 찾으러 올라갔다가 엉뚱한 책을 발견하곤 그 자리에 앉아 한두 시간씩 보낼 때도 있는데... (p. 15)'. 정재승 교수 집의 테마와 철학은 '서재에서 생각 산책하기'이다.


<더 홈>은 라이프스타일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의 칼럼 '라이프&스타일'에 소개된 집 중에서 스물두 채를 선별해 엮은 책이다. 각기 다른 매력과 사는 이들의 철학이 담긴 집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집이라는 공간을 바라보며 취재한 에디터들의 깊은 시선, 그들이 펼쳐내는 글솜씨는 집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멋진 표현들, 너무 좋다.

'레노베이션은 주어진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해야 하므로 포기해야 할 게 많지만, 재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메뉴가 탄생하기도 (p. 160, 163)'

'개인적으로 눈길이 간 곳은 지붕의 선. 마당에 서서 고개를 뒤로 젖히면 사각 하늘이 올려 다 보이는데 한쪽 면의 선이 맞은편 선보다 비스듬히 높아 은근한 율동감이 느껴진다. (p. 193)'

'창문의 미학은 다른 곳에서도 계속된다. (...) 별처럼 생긴 단풍잎이 가로로 긴 창 가득 하늘하늘 일렁이는 풍경은 절로 '잎멍'을 부른다. (...) 봄과 여름은 녹색, 가을은 빨간색, 겨울은 흰색으로 풍경의 색과 서정이 확확 달라졌다. (p. 193)'

'집을 에워싼 들꽃 정원으로 이끌었다. 정원 입구에는 밤에 내린 별이 미처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듯 작은 꽃들이 반짝였다. (p. 213)'


아내가 TV 채널을 돌리다가 눈에 띄면 어김없이 멈추는 프로그램이 EBS <건축탐구 집>이다.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가끔 내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올 때 아내는 성에 차게 인테리어를 하지 못했다. 나의 반대 때문인데 직장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집은 그저 잠자는 곳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겐 그렇지 않았다. 거의 하루 종일 머물다시피 하는 곳인 집은 나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생활하면서 아내는 집에 대한 많은 구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불편함을 편함으로, 거추장스러움을 단순함으로, 고를 때마다 심사숙고했을 가구와 소품들을 보며 후회하지 않을 결심을, 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것까지. 연속된 선택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잘한 선택과 그렇지 못한 선택을 나누었을 것이고, 이 모두를 좋은 쪽으로 돌려 보려는 계획을 마련했을 것이다. 세워진 집을 자신의 취향과 감각을 총동원해서 밥을 짓듯 집이라는 공간을 지으려고 했을 것이다.

퇴직 후 집이라는 공간에 아내만큼이나 머물게 됐다. 이제야 비로소 집을 지으려 했던 아내의 마음이 보인다. 이사 올 때 인테리어에 인색하게 굴었던 나 자신이 후회스럽다.

집을 나만의 방식으로 꾸미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인생이 그러하듯 집을 짓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집을 한번 둘러보기만 해도 집에서 집 주인의 모습을 보게 되고 냄새를 맡게 된다. 집 주인을 닮은 집은 집 주인의 녹록지 않았던 인생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