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파일 명화 스캔들
양지열 지음 / 이론과실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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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법률 이슈와 그림이다. 변호사, 기자, 철학 세 가지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라면 쓰기 힘든 주제의 글들을 참 쉽게 써 내려갔다. (뒤표지, 신장식 변호사)'

<사건 파일 명화 스캔들>은 '김태현의 정치쇼'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속 '살롱 드 지' 코너에서 양지열 변호사가 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한 폭의 그림에서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을 풀어내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이다. 딱딱한 법이 말랑말랑해진다.


주세페 크레스피의 <큐피드와 프시케>. 프시케는 밤마다 찾아오는 남편의 정체가 궁금했다. 결국 언니들의 부추김에 곤히 잠든 큐피드의 이불을 걷어버린다. '사랑은 의심과 함께 머물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큐피드는 떠난다.

배우자 또는 상대를 의심해 개인정보를 돈을 주고 산다(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싹튼 의심이 생사람을 잡곤 해서 법적 분쟁 까지 가 아름답지 못한 결론에 이른다. 무엇보다 사랑에 필요한 건 신뢰가 아니까?

'의심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는 겁니다. (p. 32)'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판도라의 상자>. 제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에피메테우스가 못마땅했다. 골탕 먹이려고 아름다운 여인 판도라(최초의 여성)와 함께 상자를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낸다. 호기심에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연다. 성경 속의 이브, 판도라, 왜 세상에 재앙을 불러온 이들은 모두 여성일까?

경찰 내부에서 여자 경찰관을 동료 경찰관이 성폭행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가 합의금 요구를 거절하자 이 사건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주변 동료들이 여자 경찰관의 말은 무시하고 오히려 비난하고 모욕을 주며 휴직을 요구했다. '그 여자 그럴 줄 알았다.' 등등의 2차 가해는 여성을 향한 뿌리 깊은 편견이 출발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에게 부당하게 가해진 저주로부터 이제는 벗어나야겠습니다. (...) '판도라'라는 이름 자체가 '많은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뜻인데요. 여성의 잠재적 재능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신화에 따르면 인간의 문명은 판도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p. 118)'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 특이하게도 옆모습인 초상화의 우르비노 공작 콧날 위쪽이 뚝 끊겼다. 결투를 벌이다 한 쪽 눈을 잃은 공작은 시야를 가리는 콧등을 잘라냈다. 이 그림의 비밀이 하나 더 있다. 마주 보는 부인의 얼굴이 창백한데 죽었기 때문이다. 공작은 부인을 무척 사랑했고 그림 속에서조차 아내를 그리워했다.

과장 광고, 잘 생긴 외모를 선호해 이미지 조작이 일상인 세상, 실제 모습과 진실이 숨겨진 세상에서 우리는 산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흔적을 자신의 신체 어딘가에 새기기 마련입니다. 그 흔적의 참된 의미를 어떻게 해야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외모로만 평가한다면 결코 진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p. 182)'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 오른쪽 아래에 왜소증 소녀가 눈에 들어온다. 당시 귀족은 장애인을 시종으로 부리며 때로 웃음거리,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난한 집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일부러 기형으로 만드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벨라스케스는 왕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이고 스스로도 높은 신분의 귀족이었지요. 그의 눈에는 모두가 평등한 것으로 보였답니다. (...) 적어도 그의 그림 속에서만은 모두가 평등한 존재였습니다. ( p. 202, 203)'


'법원은 과거를 심판할 뿐 미래의 설계도를 그리지는 못합니다. (p. 147)'

한 손에 저울, 다른 손에 칼을 쥔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서다. 눈가림은 법 앞에서 누구나에게 공정하고 공평한 판단을 의미한다. 편견과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요즘 법을 집행하는 이들에게 눈가림은 없다.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자신만의 이익을 쫓고 차별을 일삼는다. 저울은 팽개치고 칼만 휘두른다. 서슬이 퍼렇다. 차갑다. 오싹하다.

이 책의 저자 양지열 변호사의 그림을 보는 눈과 그의 글은 따듯하다. 이런 법조인이 눈에 띄는 건 참 다행스럽다. 따뜻한 법 이야기를 읽게 돼 좋았다. 머리는 차가울지라도 법의 마음만은 따뜻했으면... 그런 세상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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