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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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의 저자 탁현규는 고미술계 최고의 해설가이다. 그는 이 책에 조선 문화절정기의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를 담아 특유의 해설로 특별한 순간을 이야기한다.

'풍속화가 사생활이라면 기록화는 공공생활이고 풍속화가 드라마라면 기록화는 다큐멘터리다. (p. 9)'

당시 그림은 사진을 대체했다. 통치자는 자신의 임무를 되새기기 위해 백성들의 사는 모습에 관심을 가져야 했고, 사람들의 풍속을 그린 풍속화를 보며 백성들의 생활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책 <조선 미술관>에 실린 50여 점의 그림과 탁현규의 설명을 통해 조선 후기의 백성들의 일상과 왕실, 상류사회의 성대한 잔치 모습을 우리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사람 구경이라고 했던가.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는 산수화만큼 사랑받았다. (p. 12)'

저자는 그림 한 장에서 스토리를 찾아내고 신윤복, 정선, 김홍도를 비롯한 7인이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 연출 의도를 알려줘 매우 흥미롭다.

<귀인응렵貴人鷹獵>에서 김홍도는 사슴 다리와 말 다리를 가려놓아 '다 그리면 재미없다'라는 법칙을 지킨다. 뒷배경도 나무 한 그루만 그리고 비워놓아 오롯이 말탄 선비에게만 집중해서 감상하도록 한다.

<밀희투전密戲投錢>에서 김득신은 패를 쥔 네 명의 손짓을 다르게 그려, 각자 속마음이 다른 도박판의 상황을 나타냈다.

정선 역시 <어초문답漁樵問答>에서 어부의 얼굴을 다 그리지 않아 '다 그리면 재미없다'라는 법칙을 어기지 않는다. 이 그림은 중국 것을 소재로 그렸지만, 멜대를 지게로 바꾸고 중국 그림에서 서있는 어부와 나무꾼을 땅바닥에 앉혀 느긋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그림으로 조선화化를 이끌어냈다.

노상에서 두 부부가 만나는 <노중상봉路中相逢>에서 신윤복은 눈빛 교환만으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삿갓 쓴 여인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에서 미모 경쟁을, 미모의 부인을 둔 남성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에서 시샘을, 남성의 눈빛에서는 자신감을 담아내 심리묘사를 극적으로 연출했다.


'풍속화와 더불어 조선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그림이 공공 모임을 그린 기록화이다. (...) 기록화 가운데 압권은 임금이 등장하는 궁중기록화이고 그 가운데 역시 희귀성에 있어 으뜸은 임금이 기소에 들어간 사건을 그린 기사첩耆社帖이다. (p. 156)'

기로소는 기로사耆老社 혹은 기사耆社라고도 하는데 70세 이상 정 2품 이상의 문신들이 들어가는 영예로운 모임을 일컫는다. 왕은 이들과 달리 60세가 되면 들어갈 수 있었다. 숙종과 영조의 기로소 입소 잔치 기록인 <기해기사첩>과 <기사경회첩>을 보며 당시 사회가 노인을 얼마나 우대했는지와 두 화첩의 그림으로 두 왕조의 문화 수준 차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이를테면 숙종은 사치와 향락을 경계하였으므로 당시 기록 화첩에서는 기녀가 등장하지 않는 반면 영조에 이르러서 <본소사연도本所賜宴圖>에는 머리에 꽃을 꽂은 춤추는 기녀들이 등장한다.


도슨트 탁현규의 <조선 미술관>은 일종의 그림 '감상하기'를 알려주는 책이다. 미술관의 각종 오디오와 미디어로 작품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림을 찬찬히 응시한다면, 저자처럼 그림 한 장에서 스토리를 찾아 읽어내기가 가능하고 작가의 연출 의도를 끄집어내게 될지도 모른다. 제대로 감상하는 한 장의 그림이 선조들과 우리들을 이어주는 진정한 교감이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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