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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의 호시절
이강 지음 / 북드림 / 2023년 1월
평점 :
글 하나를 읽고 책장을 잠시 덮은 후 생각해 본다. 작가 이강이 간직한 추억과 비슷한 나의 기억들을...
우리 집 바로 위에 고모님이 사셨다. 학교에 다녀온 후 뒹굴뒹굴하며 지내던 고모님 댁. 그 위로 한 집 건너엔 솜틀집, 누런 솜이 새하얀 색으로 바뀌어 뭉게구름처럼 몽실몽실한 자태로 나타나는 게 너무 신기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던 곳이다. 그 위로는 방앗간. 국수를 널어놓은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국수 가락을 끊어 몰래 먹곤 했다.
길 건너 아래에는 대장간이 있었다. 조카뻘인 대장간 아저씨는 담금질하며 쇠를 다루는 모습을 넋 놓고 구경하는 나에게 아저씨 왔냐면 과자를 건네 주곤 했다. 우리 집 옆 건너편 학교 앞에는 하성당, 교문사문방구, 두 곳의 문구점이 있었는데 모두 친구네 집이어서 어느 곳을 이용하든지 눈치가 보였다. 사진관, 다방, 대소서, 장터... 지금도 동네 약도가 내 머릿속에 또렷하다.
책 겉장부터 개어서 쌓아놓은 이불과 베개의 선명하고 한국적인 색감이 인상적이다. 책에 담긴 이강 작가 작품에서 그리워하는 정서와 옛 마음이 느껴진다. <이강의 호시절>은 이강 작가의 어린 시절, 엄마가 차려주시던 밥상, 고향 이야기, 집의 나무들, 가족, 할머니 댁, 할머니표 먹거리에 얽힌 추억 이야기다.
'이 글 속에 담겨 있는 일상적인 사물들이 내 삶에 녹아 있는 철학이 되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p. 10)'
작가의 어릴 적 일상들과 서랍, 이불장, 찬장... 추억이 되어 작가가 힘을 발휘하도록 했다. 그리고 작가의 글은 우리에게 공감을, 위로를 건넨다.
'뒷마당에는 왜 그리 재미있는 것이 많을까? 바닥에 박힌 돌멩이 자국만 쳐다보면서도 한나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p. 230)'
지난해 말, 아버님의 빈소를 지키며 누님 두 분과 어릴 적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밤을 지새울 만큼이나 끊임없이 생각나는 에피소드들... 같은 일을 겪고도 각자의 기억에 남은 것들은 서로 다르다. 서로 우기며 깔깔거리다가도 끝내 눈시울을 적신다. 우리 형제들의 추억은 웃음으로 끝낼 수 없는 추억들이다.
내가 나의 호시절 70세대 레트로 감성을 불러냈듯이, 각자의 호시절, 80세대 또는 90세대의 레트로에... 젊다면, 자신들의 스타일로 뉴트로에... 취하길 원한다면 <이강의 호시절>을 읽고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