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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샵
피넬로피 피츠제럴드 지음, 정회성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8월
평점 :
'1959년, 플로렌스 그린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굴 창고가 딸린 바닷가의 낡은 건물 올드하우스를 사들여 하드버러 최초로 서점을 열어야 할지 말지 고민한 탓이었다. (p. 7, 첫 문장)'
전장에서 남편을 잃은 중년의 플로렌스는 자식도 없고 재산도 없다. 정착하려 하는 작은 바닷가 마을 하드버러는 남편과 플로렌스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플로렌스는 이곳에서 서점을 열려고 한다. 대출을 받아 오랫동안 방치된 올드하우스 꾸미고 책들을 들여놓는다.
이 계획이 알려지자 마을의 최고 권력자 가맛 부인은 올드하우스에 문화센터를 세운다는 핑계로 다른 마을에 서점을 열라고 압박하며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방해하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도 가맛 부인의 편에 선다.
큰 저택에 틀어박혀 사는 명문가의 브런디시는 플로렌스와 서점을 지지한다. 죽음 앞두고 가맛 부인을 찾아가 플로렌스를 내버려 두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가맛 부인의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지만...
피넬로피 피츠제럴드는 예순한 살인 1977년에 늦깎이 소설가로 데뷔했다. 첫 작품 <황금 아이 Gold Child>는 주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고 이듬해인 1978년 <북샵>을 내놓았고, 다음 해 1979년 <오프쇼어 Offshore>로 멘부커상을 수상하면서 마침내 소설가로 인정받았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피츠제럴드는 소외된 존재들을 자신의 소설에 등장시켰다.
'피츠제럴드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 대부분은 기존의 사회 질서에 녹아들지 못한 채 방황하는 사람이거나 꿈만 좇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신음하는 예술가이거나 부모가 없는 가난한 아이 등 소외된 존재들이다. (p. 252)'
<북샵>의 플로렌스 역시 사회적 약자다. 남편도, 자식도, 재산도, 인맥도 없다. 하지만 용기가 있다. 플로렌스의 유일한 지지자 브런디시도 이 점을 칭찬한다.
'"제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무얼 존경하는지 말씀드리지요. 신이나 동물도 가지고 있겠지만, 저는 무엇보다 인간이 지닌 미덕, 굳이 미덕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겠으나 아무튼 지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합니다. 그것은 바로 용기이지요. 그린 부인, 댁은 용기가 아주 대단한 사람입니다." (p. 165)'
플로렌스는 책을 통해 삶의 희망을 찾고자 하지만, 먹고살기 힘든 어촌 마을 사람들은 '책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라고 여긴다.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얼핏 우리들이 보인다. 플로렌스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을 훼방하는 이들과 가맛 부인에 맞서 꿋꿋하게 서점을 운영하자 점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서점을 찾게 되고 책에서 위로와 공감을 얻는다.
'플로렌스는 인간 세상은 절멸시키는 자와 절멸당하는 자로 나뉘어 있고, 언제나 절멸시키는 자가 우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안 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p. 63)'
우리도 부침을 겪으며 삶을 살아간다. 훼방꾼을 만나기도 하고 내 편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도 소설 속처럼 '절멸시키는 자'가 우세한듯하다. 플로렌스처럼 용기를 내보지만 플로렌스가 결국 서점을 닫듯이 우리도 힘이 부친다.
하지만 플로렌스가 힘이 들 때 바닷가를 찾아가고 책에서 위로를 받듯, 우리도 위로받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플로렌스는 포구에서 상공을 나는 왜가리 한 마리를 보았다. 왜가리는 힘차게 날갯짓하면서 부리에 문 장어를 삼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장어는 장어대로 왜가리 부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p. 7)'
그리고 '절멸시키려는 자'의 부리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쳐야 한다. 희망을 놓지 말고.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다.
잔잔한 울림이 담긴 <북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