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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ㅣ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평점 :
작가정신이 멋진 취지로 기획한 근대와 현대 여성 작가를 잇는 '소설, 잇다' 시리즈 첫 번째 책은 백신애와 최진영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다. 1908년생 백신애 작가의 소설 세 편과 73년의 세월이 지난 1981년생 최진영 작가의 소설 한 편, 에세이 한 편 그리고 문학평론가 이지은의 해설을 이 책에 실었다. 이어질 이 시리즈에 등장하게 될 근대 여성 작가는 또 누구일지 무척 기대된다.
우선 백신애의 세 편의 소설부터...
<광인수기 狂人手記> - <조선일보>, 1938년 6월 25일~7월 7일
'아니다, 네 이놈 하느님아. 에이 빌어먹을 개새끼 같은 하느님아, 네가 분명 하느님이라면 왜 그 악하고 악한 도둑놈의 연놈을 그대로 둔단 말인고. 당장에 벼락 천둥을 내려 연놈을 한꺼번에 박살을 시킬 일이지... (...)
저 빌어먹을 낮잠 잘 하느님은 저를 위해주고 겁내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건방이 늘고 심술이 늘어가더라. 나를 영 사람으로 여기지 않더라. (p. 16, 17)'
비가 쏟아지는 다리 아래에서 하늘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주인공 '나'는 아내로써 남편을 보살폈고, 며느리로써 시부모의 모진 학대를 견뎌냈다. 하지만 주인공이 마주한 현실은 그렇게 자신을 아끼고 예뻐하던 남편의 외도와 배신이었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주인공이 한이 서린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이란 하늘밖에 없고, 돌아갈 곳은 자식들이 있는 집뿐이다. 미쳐가면서도 어머니로 돌아간다.
<혼명混冥에서> - <조광>, 1939년 5월
'어머니의 눈물입니다! 조용한 어머니의 눈물은 나에게서 모든 용기를 앗아가는 무기였습니다. 그 눈물은 오직 나에게 안일을 주려는 지극한 사랑이 근원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털끝만치도 나를 이해해 주려고는 생각지 않아요. 다만 끝없이 사랑할 줄만 압니다. 그 사랑을 감수하지 않을 듯한 불안에 항상 슬퍼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달래보며 온갖 정성을 다해줍니다. (p. 73)'
이혼한 주인공 '나'에 대한 가족과 어머니의 기대는 조용히 근신하는 여성의 삶이다. '나'는 이를 배반하려 한다. 내가 해야만 할 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한다. 세상의 성미를 맞추기보다는 세상을 내 성미에 맞추려고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어머니의 눈물은 쌓인다.
<아름다운 노을> - <여성>, 1939년 11월 ~ 1940년 2월
'인간에게 만일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많이 연소燃燒했던가 하는 것이다. 라고 앙드레 지드가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타려고 해도 탈 수도 없는 가장 애끓는 이야기였다. (p. 111)'
열 여섯 살 아들이 있는 젊은 미망인 순희는 친정의 대를 잇기 위해 재혼해 아들을 낳아야 할 처지다. 정규는 순희에게 구혼 중인 의사 성규가 아들처럼 보살펴온 열아홉 살의 동생이다. 순희는 처음 만난 정규의 모습에서 '그림을 시작한 후 그리고, 그리고 해오던 이상의 얼굴 (p. 123)'을 본다. 순희는 아들 또래인 정규와의 사랑을 애써 부정하며 예술적 욕망이라 우기며 몸부림친다.
<광인수기>에서는 여성단체 활동을 한 백신애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혼명>에서는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아름다운 노을>에서 작가 백신애는 순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캐릭터로 모습을 드러낸다.
<구의 증명>으로 이미 알고 있는 최진영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이십 대 여성 정규는 정규직을 꿈꾸는 취준생이다.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편의점에서 위협적인 남자 손님을 응대하던 중 딸의 가출한 친구를 찾기 위해 편의점을 들른 순희의 도움으로 정규는 그 위기에서 벗어난다. 순희는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했고 딸과 생활을 위해 공무원으로 일하는 삼십 대 여성이다. 우연히 정규가 주말 아르바이트하던 펍에서 순희를 만났고 그 만남은 계속 이어진다. 둘은 서로 기다리는 사이가 되고 의자처럼 편히 쉴 수 있는 사랑을 한다.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건 바로 이런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는 것. 비슷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 나에게 기쁜 마음을, 심심한 마음을, 힘든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외롭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망하고 계속 망할 뿐이라는 평범한 삶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다. (p. 229)'
표제작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백신애의 <아름다운 노을>을 팔십 년을 이어받아 최진영이 변주한 소설이다. 정규와 순희를 그대로 가져와 정규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어, 성인 여성과 어린 남성의 사랑을 성인 여성과 젊은 여성의 사랑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예나 지금이나 파격적으로 여겨지는 두 스토리 모두 '세상이 아직도 '이상한 queer' 것이라고 구별 지으려 하는 사랑 (p. 258)'이다.
최진영은 <광인수기>를 이어 써보려 했으나 소설이 아니라 분노만을 쓸 것 같았고,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 정규를 남성 그대로 설정했다면 그 이야기는 범죄 스릴러가 될 것 같아 여성으로 바꾸었다고 에세이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에서 밝힌다. '나는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쓸 수 있는 글을 생각했다. (p. 234)'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문장인 "나를 영 사람으로 여기지 않더라"에 밑줄을 여러 번 그으며 생각했다. 선생님, 저는 2022년의 사람입니다. 현재에도 어떤 자들에게 여성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려는 자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
'성인 남성과 명예 남성'이 아닌 소수자들은 '성인 남성과 명예 남성'의 안락한 삶을 위해 희생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여전히, 이곳에 있습니다. 선생님. (p. 231, 232)'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것이 없기에 작가 최진영은 가부장제의 사회와 직장에서 여성이 느끼는 피로감을 더 이상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성이 지닌 사랑의 가치를 지켜주고, 그 사랑이 주는 다정함과 위안, 설렘과 따뜻함을 쓰고자 한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 주인공은 남성이 아니다. 남성이 설자리조차 없다. 여성이 주인공이고, 고단하고 차별받은 삶이 아닌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여성들의 삶이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