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회 - 나우주 소설집
나우주 지음 / 북티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본인도 책으로 엮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하는 나우주의 단편소설 여덟 편이 실린 첫 소설집 <안락사회>다. 찾아보니 7년 동안 절필했던 모양이다. 하마터면 대단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구경도 못할 뻔했다. 이런 작품을 읽는다는 건 몹시 즐거운 일이다.

여덟 편을 공들여 읽었다. 뭔가 묵직한 것이 전달되는 데 희미하다. 생각이 많아졌다. 이 책 끝에 조동선 작가의 해설이 눈에 들어와 다행이었다. 아직은 내 능력으로 또렷이 읽어내기엔 모자랐다. 해설과 여덟 편의 작품을 다시 번갈아 보며 읽으니 여러 가지가 보였다.


표제작 <안락사회>

'다섯 마리의 개가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력 장애로 버려진 197번. 나이가 많아 오줌을 지린다고 버려진 254번. 성대가 잘려 짖지 못하는 236번 새 아파트에서 키우기엔 덩치가 크다고 버려진 178번. 그리고 156번, 나였다. 우리는 언덕 위에 있는 간이 수술실 밖에서 목에 번호표를 단 채 각각의 철망에 담겨 줄지어 있었다. (p. 245, 첫 문장)'
유기견 보호소의 개들이다. 기한은 10일, 주인이 찾아오거나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맞게 되는 개들이다.

책 표지에 개와 인간의 모습이 반반인 얼굴이 암시하듯, 다섯 마리의 개와 같은 이유로 안락사를 맞게 될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 내가 사는 사회다. 태생이 열등이거나 후천적으로 열등의 부류로 분류된 사람들은 안락한 사회를 위해 조용히 제거돼야 한다. 나치가 그랬고,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미국에 최근까지 그랬다. 역사도 그렇게 했다.

열등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려, 우등인 부류에 들어가려 나보다 열등해 보이는 자들을 비하하며 발버둥 쳐 보지만 역부족인 사회다. 우등인이 보기엔 시력 장애, 똥오줌도 못 가리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등등의 이유로 열등인 자들일 뿐이다. 그래서 안락사 대상이다. <안락사회>를 위해서...


'집이 사람을 인식합니다. (p. 9)'. 17평 풀옵션 <코쿤룸>에서 재택근무하는 주인공의 삶은 코쿤 공간과 재택근무를 가능케하는 디지털 환경에 갇혀있다. 주인공은 디지털 환경의 껍질을 벗기고 경험의 세계로 나오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코쿤룸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다. 현실이 아닌 디지털 환경의 좁은 공간에 살다간 삶이다.

<집구석 환경 조사서> 장래희망 란에 정규직이라 적고 정규직을 꿈꾸는 가족들, 집구석에 산다. 정규직 취직 그 이상을 꿈꾸는 건 욕심이라 여기는 사람들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 남편의 부재 속에서 딸을 키우는 어머니는 모성과 여성성 모두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자신의 욕구도 지키기엔 처한 환경이 녹록지 않다.

<기억의 제단>에 올려진 기억 속에서 두 가지 자아가 갈등한다. 하나는 행동하는 자아이고 그 행동을 왜곡해 가면서까지 정당화하려 애쓰는 자아가 또 하나다.

상위 1퍼센트의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며 빚으로 욕망에 채우지만, 흉내를 내는 것일 뿐 한계가 있다. 돈이 없어 누릴 수 없는 인생일 뿐이다. 허물어져 가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허황되기만 한 <아름다운 나의 도시>.

자본주의 시장은 백수인 아버지와 아들에게 조용히 숨죽이고 집 안에 처박혀 있기를 권한다. 아버지는 TV로 아들은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속해 있으면 된다. 교회 신도들이 집으로 심방을 오면 한 쪽 구석 방 안에 머물기를 자본주의 시장은 권한다. <조용한 시장>에 조용히 있기를 권한다.

여성들이 볼 때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 사회는 아름답고 일도 잘하는 여성을 원하고 요구한다. 게다가 그게 평균의 삶이라며. 궁지에 몰린 여성은 번아웃에 시달려 정신병원에 모여든다. 번아웃을 벗어나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 사회가 망쳐놓은 자연에 기대는 것뿐이다.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 사회에 공통으로 시달리는 여성과 자연의 연대만이 해결책이라면 너무 편협한 시각일까?


무시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였다. 무시된 그룹에 젊은 청춘들이 포함된 것이 가슴 아프다. 이들은 어떤 기회도 누리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이번 생은 망했다'라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