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2 - 전2권 ㅣ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11월
평점 :
이 책의 주인공 케이시 한은 많은 능력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이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민 1세대 조셉과 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케이시는 173센티미터의 키에 날씬하고 성적 매력이 있으며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했다. 케이시는 멋진 패션과 화려함에 대한 욕망뿐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도 갖고 있다. 은근히 감추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민자의 딸이라는 조건은 케이시에게 부모와는 다른 근면하고 힘겨운 일상을 넘어선 성공적인 삶은 꿈 꾸도록 강요하지만, 케이시는 화려함과 통찰을 갈망한다. 하지만 그가 가진 능력과 많은 매력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사회 곳곳에 인종과 계급이라는 정교한 거미줄을 케이시 앞에 쳐 놓고 막아선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 1, 2>는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된 한국인 이민자 1세대, 2세대를 다룬 미국인 이야기다.
소설에서 이민 2세대 작가 이민진은 자신과 같은 이민 2세 한국계 미국인을 향한 바람을 담은듯하다.
'이 책에서 나는 등장인물들에게 온갖 장점들을 부여했다. 교육 수준, 외모, 재능, 강한 가족적 배경... 그리고 나는 그들이 각자의 야심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그들에게는 시련도 주어지고, 각자 문제도 일으킨다. 인종과 계급, 이민, 젠더 정치학이 그들에게 영향을 줄까? 혹은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 역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매우 궁금했다. (p. 471, 472)'
주인공 케이시는 자신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사비가 준 은팔찌를 양손에 차고 팔을 크로스 하며 언더우먼 흉내를 내곤 하는데, 작가 이민진은 언더우먼 같은 능력을 이민 2세대를 갖기를 바라며 케이시라는 캐릭터에게 온갖 능력을 주었다. 인종과 계급이라는 차별을 생각하면 그 정도 능력을 갖춰야 동등하다고 여겼을까?
재미교포 2세에 대한 나의 단편적인 시각은 90년 대 압구정동으로 상징되는 강남 부유층 2세들과 뭉뚱그린 오렌지족이란 이미지다. 작가의 시선을 그렇지 않다.
언니 케이시를 지지하지만 같이 행동하지 않고 언니를 자신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동생 티나. 자신의 욕망은 숨기고 사랑하는 이가 원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엘라. 멋진 외모에 야망을 갖춘 테드. 부드럽고 친절하고, 가난해 본 적이 없어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도박으로 실패를 맛보는 은우. 혐오의 대상이면서 다른 2세대들을 혐오하는 한국계 미국인들. 이들 2세대들은 1세대 부모들이 사랑과 감정에 대해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들을 듣지 못하는 세대들이다.
반면 1세대들은 2세대들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며 죽도록 일을 한다. 하지만 자식들은 이들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을 닮고자 하지 않는다. 1세대들에게 인생이란 버겁고 무섭고 계획과 안전이란 그들 인생에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인생이 이들을 내버려 두질 않는다. 심지어 케이시의 어머니 리아는 여행을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는 일을 두려워하기까지 하는 인물이다. 물론 1세대이지만 사빈은 관습을 거스른다.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 자신의 꿈을 결실로 맺는다. 사빈은 가치와 고귀한 것들은 실용적이지 않은 큰 야망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서로 돕는 커뮤니티가 필요해서, 의지할 대상이 간절해서 독실한 신앙을 가진 1세대에 반해, 2세대들은 다양한 신앙과 종교적 신념을 드러낸다. 케이시처럼 불가지론으로 타협하는 믿음이 있는가 하면, 깊은 믿음은 아니지만 우연보다는 외적인 질서의 존재를 확신하는 테드 같은 믿음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이민 2세대와 1세대를 등장시켜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 미국에, 이민 온 한국계 미국인도 이들과 같이 똑같은 다양성을 가진 미국인이라는 주장이 아닐까? 유럽인에게 열등감을 가진 미국 백인들처럼, 새로운 부를 획득하려는 개척자 정신을 가진 미국인들처럼, 열등감과 프런티어 정신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들도 미국인이라는 생각 말이다.
교포들에 대해 오렌지족이라는 나 같은 사람들의 단편적인 시선을 거부하는 것이리라. 물론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입 밖에 내기를 주저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심성 때문에 타인이 우리의 성격을 대신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양성이 배제되는 결과를 빚기도 하겠지만, 이들의 이야기도 다양성을 가진 미국의 이야기다. 폄훼하면서도 살고 싶어 하는 나라 미국의 이야기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해 볼 만한 것은 옮긴이가 제시한 문제인데, 이들 한국계 미국인의 이야기를 우리나라로 가져온다면? 어떻게 될까.
'누가 우리, '한국인'이라는 집단을 구성하는가. (p. 486)'
인종 전시장인 미국의 소수자 한국계 미국인보다 우리나라에 온 이민자들의 사정은 훨씬 안 좋다.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인임을 주장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시선이 집중되는 한국에서 이들이 한국인임을 주장하는 것은 더 힘겹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소수자인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계급의 장애물을 이겨내 해피엔딩이 되기를 응원했다. 한국전쟁부터 함께 자리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이민자들은? 내가 그들은 응원했나? 그들도 해피엔딩이 되기를? 아메리칸 드림을 품었듯 코리안 드림을 품고 와 미국 이민 1세대들처럼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말이다. 이들에게도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응원을 보냈듯 같은 크기의 응원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