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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Chaeg 2022.11 - No.81
(주)책(월간지) 편집부 지음 / (주)책(잡지) / 2022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는 항상 어떤 곳에 머문다. 유령이 아닌 이상... 형체가 있다면...
언제,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공간의 모습, 공간의 냄새, 그 공간의 기억은 달라진다.
공간에 따라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공간에 맞춰 살아가기도 하고, 내 삶에 공간을 맞추기도 하고...
'<Chaeg> 81호에서는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공간이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부터, 똑똑한 아이디어가 가득한 가족의 집, 자연과 함께하는 집 등을 통해 나에게 맞는 공간이 삶에 가져다주는 의미에 대해 짚어보고자 합니다. (p. 18)'
어떤 곳에 머물기를 원하나, 어떤 곳에 살기를 원하나, 어떻게 꾸민 곳을 원하나, 그곳에서 무얼 하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 누구나 할 말이 많은 주제...
책과 문화, 예술을 담은 잡지 <Chaeg>의 이번 주제는 '똑똑, 어떤 곳에 살고 있나요?'이다.
배우 봉태규에게는 온기가 스며 오한을 달래주는 집이 우리집이다. 방송인 김재동의 공간에는 항상 사람이 함께 기억된다. 작가 전혜진의 집에 골칫거리는 책이다. 책을 정리하다 말고 읽게 되는 책, 그래서 버리지 못하고 책이 쌓여 한자리 차지하는 전혜진의 집. 주워와 쓸모를 되찾아 준 소파에 누운 작가 신승은, 그의 집에는 버려졌지만 새로운 시간을 오랫동안 함께한 친구 같은 가구가 여럿 있다.
집을 마련한 후 결혼하겠다는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결국은 늦어지는 결혼 핑계였던) 고집, 신념 덕분에 서른 중반에 24평 아파트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주택은행 지분이 절반이나 됐지만 내 집인 양 뿌듯했다. 더 큰 공간이 필요해서 전세를 전전하기를 10년... 다시 내 집은 마련했다. 이번에 신한은행 지분이 제법 됐다.
화장실, 싱크대, 식탁, 침대, 옷장, 전등... 인테리어도 흰색 톤으로... 적당히 돈과 타협하며 웬만한 건 모두 바꿨다. 보기에 심히 좋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후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집의 인테리어가 들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용성, 편함, 분수에 맞음, 이런 좋은 말들을 '비교'란 놈이 단숨에 제압했다.
책이 조금 있었지만 잔뜩 쌓여 발에 챌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책장의 책을 읽다가 서평단 모집을 알게 됐고 책 욕심이 발동해 마구마구 받았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여기저기 책이 쌓여갔다. '이 책들 다 어떻게 할 거냐', '책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다', '여기저기 쌓아놓지 마라'... 아내의 잔소리도 쌓여갔다. 버티고 또 버텼다. 보다 못했는지 며칠 전부터 아내가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공간을 마련했고 조금씩 조금씩 책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아내 뜻과는 상관없이 나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비교'란 놈 때문에 지금 우리 가족이 사는 공간의 인테리어, 가구는 다소 만족스럽지 않지만, 아이들 방과 나의 공간을 마련하려고 팔짱 끼고 고민하고는 조금씩 편하게 바꿔보는 아내의 배려가 가득한 곳이 우리집이다. 내가 머슴이냐며 투덜대면서 집안 곳곳을 치우는, 가족들을 향한 아내의 배려가 곳곳에 배어있는 곳이 우리집이다.
그래서 우리집 공간은 눈을 감고도 다닐 정도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익숙한 공간이 되었고, 우리집의 냄새도 좋다. 세월이 흘러 다른 곳으로 이사 가겠지, 아이들 저마다 이곳에 대한 기억이 다르겠지만, 다들 이 공간에서 산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라 확신하는 우리집이다.
자기 자리 옆에 책을 쌓아둔 걸 보니, 책을 정리하다 책 몇 권이 눈에 띈 모양이다. 아내가 자리 잡고 책 <Chaeg>을 읽은 태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