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폴리스맨
베선 로버츠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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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로 시작할까 생각해봤다. 나는 이제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다. 정말로 죽이고 싶지 않으니까. (p. 11, 첫 문장)' 매리언은 심각한 뇌졸중에 거동을 못하는 패트릭을 돌보며 그에게 편지를 쓴다.


'문가에 기대어 서 있는 톰은 셔츠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려 팔에 섬세하게 도드라진 근육이 눈에 띄었다. 기껏해야 열다섯 살 정도, 나랑 만 1년 차이도 나지 않을 테지만 이미 어깨가 넓게 벌어졌고 목 아래 빗장뼈 사이는 오목하게 들어가 있었다. (p. 20)'

매리언은 톰을 본 순간, 사랑에 빠졌고 결혼까지 했다. 톰이 성소수자임을 알았지만 결혼해서 사랑을 나누고 아이도 낳으면 톰이 변하리라 여겼다. 톰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매리언과 결혼했다. 어느 정도는 패트릭과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나의 순경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빛과 기쁨이다. (p. 162)'

길가에서 톰(경찰관)을 본 순간, 패트릭도 사랑에 빠졌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자신의 지위를 잃는 것은 물론 사회적 지탄과 낙인이 두려웠지만 패트릭은 톰을 사랑한다. 패트릭은 둘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사랑을 현실로 만들고 확신하기 위해 일기로 남긴다.

패트릭과 남편 톰을 공유한 매리언은 둘이 베네치아로 여행을 간 어느 날, 이성을 잃은 나머지 세 사람 모두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보복을 실행한다. 패트릭이 동성애자임을 세상에 알린다.

이 소설은 1950년과 1999을 오가며 매리언의 편지와 패트릭의 일기로 풀어나간다. 매리언, 패트릭 모두 톰을 사랑한다. 매리언은 이성으로, 패트릭은 동성으로. 하지만 둘 다 드러내지 못하는 사랑을 했다. 매리언은 남편 톰이 동성애자여서, 패트릭은 동성 간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사랑은 실패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이름만으로 충분한 법이다. 내 손이 톰의 이름을 만들어내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완전히는 아니고 거의. (p. 37)'

1950년대 영국, 동성애는 범죄로서 사랑이 죄가 되는 시대에 같은 남자를 매리언과 페트릭은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편견, 배제를 거스르는 사랑을 시도했지만 패트릭은 투옥됐고, 매리언은 남편, 집, 가정을 이룰 기회가 날아갔다.


'당신과 나는 정말로 많이 닮았다, 안 그런가? 전에 와이트 섬에서 육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당신이 톰의 의견을 반박할 때 나는 그걸 알았다. 줄곧 알고 있었지만, 이 글을 쓰며 우리 둘 다 원하는 걸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에야 진정으로 실감한다. 사실은 별것도 아니지만 - 원하는 걸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p. 485)'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슬픈 사랑은 사회가 이들을 내려다보는 곱지 않은 눈길에 결국 굴복하고 만다. 사랑을 갈망했고, 실패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삶에서 매리언은 패트릭과 닮았다고 여긴다. 매리언은 진실을 밝히고 톰과 패트릭, 둘만의 시간을 마련해 주며, 늦었지만 자신의 다른 길을 찾아 떠난다.

'지금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다른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당신을 다시 들여다보지는 않겠다. 톰이 당신에게 읽어주기를 바라며 이 글을 식탁에 올려둘 생각이다. 이걸 읽으면서 톰이 당신의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 패트릭, 용서해달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는 말하고 싶다. 그리고 안다, 지금쯤이면 이미 끝까지 잘 들어주었으리라는 것을. (p. 504)'


베선 로버츠는 <마이 폴리스맨>을 영국 작가 E. M. 포스터(1879~1970)의 오랜 연인이었던 경찰관 밥 버킹엄과 그의 아내 메이 버킹엄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세 사람도 뒤얽힌 관계도 사십 년간 이어졌고 포스터의 마지막을 메이 버킹검이 지켰다고 한다.

소설 같은 현실이고 현실 같은 소설이다. 사랑에 무슨 죄가 있을까. 어떤 사랑은 죄로 규정하는 편견이 사랑에도 존재한다. 그 사랑은 좌절뿐 아니라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다. 여느 편견과 차별, 혐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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