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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사강은 단편집 <길모퉁이 카페>에 이별과 상실을 동반하고야 마는 사랑 이야기 열아홉 편을 모았다. 사강은 여러 사랑 이야기를 한다. 인간에게 늘 따라다니는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자유로운 감성으로 섬세하게 심리를 묘사하며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비단 같은 눈
'제롬은 산양을 죽이지 않기로 했다. 왜, 언제,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 사실 제롬은 이유를 알려고 들지 않았다. (p. 31, 32)'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잡은 친구, 그 남자를 죽이지 않기로 한다. 사실 많은 이유가 있다. 알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것도 아내를 사랑하는 한 종류의 사랑이다.
지골로
'계단을 오르던 여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늙어버렸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p. 51)'
젊음은 늙음도 사랑할 수 있지만, 늙음은 젊음을 사랑할 수 없다. 아니 피할 수밖에... 이것도 사랑이다. 홀로 삭여야 하는 사랑.
누워있는 남자
'그는 씁쓸했다. 스무 살에 혐오해 마지않던 진부함들을 계속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게 피곤했다. 죽음은 죽음을 닮았다. 사랑이 사랑을 닮은 것처럼. (p. 59)'
아내는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 불치병에 걸린 남편은 죽음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이별해야 한다. 죽음이 사랑을 갈라놓기도 한다. 엇갈린 사랑을 인정하며 눈 감아야 한다.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의 사랑이었기 때문에... 이것도 사랑이다. 치명적으로 아픈 사랑.
사랑의 나무
'그러나 스티븐은 어쩌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삶이 그에게 회복할 수 없는 따귀를 갈긴 것 같았다. (p. 98)'
아픈 이별도 없었고 로맨스도 낭만도 없었던 오래전의 사랑이 어느 날 깊은 사랑으로 찾아온다. 뒤늦게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사랑. 그런 사랑.
어느 저녁
'불행해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행복해 지려고 노력하는 것만 큼이나 쓸데없는 짓이다. (p. 101)'
사랑하는 남자를 못 잊겠기에 불행해지기 싫어서, 다른 남자에게라도 위로를 받으면 행복해지리라 여기지만 다 쓸데없는 짓이다. 사랑은 쓸데없는 짓이다. 결말이 사랑이 아니므로... 쓸모없는 사랑.
디바
'"그 사람은 고음의 C조야 베르디 오페라 중 가장 높은 음이지 알겠어?" (p. 113)'
디바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랑,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세 번 밖에 만나지 못한, 오늘도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랑은 C조! '"대신 30초 동안 그 음을 유지해야 해." (p. 114)' 디바의 사랑.
왼쪽 속눈썹
'그런데 지금이 기차에서 말을 듣지 않는 손잡이 때문에 가장 기괴한 상태로 갇힌 그녀는 그녀를 구해줄 수 있는 남자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그 남자에게 - 그녀는 그 남자 덕분에 기차에 올라 그를 향해 가고 있었다 - 그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그에게도 그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하러 가는 중이었다. (p. 167)'
이별을 통보하러 가는 여인. 이별을 생각할수록 마음은 그 남자를 향한다. 두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사랑.
길모퉁이 카페
'아직은 건강한 상태였던 마르크는 마치 우연인 듯 망트 라 졸리에 이르기 전에 플라타너스에 돌진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힘과 자기 자신에 대한 호의를 베풀었다. (p. 204)'
예정된 죽음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된다. 그건 나약하지 않아도, 변명하지 않아도 돼서 좋은데, 죽음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초췌한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다. 자신을 사랑해서 자살로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기도 하는 그런 사랑도 있다. 비참한듯한 사랑.
이탈리아의 하늘
'그는 더 이상 아무에게도 이탈리아의 하늘, 루이지아의 입맞춤, 낯선 집에서 약한 몸으로 누워 지냈던 달콤한 시간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은 벌써 10년 전에 끝났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p. 226)'
지금도 여전히 꺼내보는 그런 사랑은 잊지 못한다. 항상 마음 한편을 지키는 그리운 사랑.
이별, 상실, 죽음, 늙음, 슬픔, 고독, 외로움, 아픔, 그리움, 질투, 갈등... 사랑의 주변을 맴도는 감정들이다. 그리고 사강이 전해주는 사랑의 색깔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