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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평점 :
'"펑즈? 펑즈! 내가 펑즈라고? 어떤 놈이 그래? 응? 어느 미친놈이 날더러 펑즈래!" (p. 15, 첫 문장)'
70대 중반의 두위광, 그는 1940년 대 후반 중국 출신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1살에 주문둥이로 시작, 내로라하는 중식당을 거치면서 지독한 연습으로 요리를 익혀 중국요리 대가에 이르렀고 명동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청요리 집 '건담'을 차렸다.
'평생 배곯지 말고 실컷 먹고살라고 '대식가처럼 많이 먹는다'라는 뜻이 담긴 '찌엔딴(健啖 건담)'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 불렀고, 한국인 아내는 이에 질세라 그냥 '건담아', 나중엔 '대식아'라고 맘대로 불러버렸다. (p. 21)'
"천러얼츠, 천러얼츠(뜨거울 때 먹어라)!!" 두광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이 말에는 그의 요리 철학과 요리사로의 마음이 담겼다. 가장 맛있는 맛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다.
'위광의 요리 철학은 단순 명료했다. 중화요리는 홀에서 뜨거울 때 바로 먹어야 한다는 것. 특히나 기름이 많은 짜장면이나 탕수육 같은 온도에 민감한 요리는 만든 직후에 바로 먹어야 한다는 게 위광의 지론이었다. (p. 88)'
양손에 웍을 돌리며 쩌렁쩌렁 호령하던 두위광도 세월을 피해 가지 못했다. 힘을 잃고 머리에 피가 고여 맛과 향도 잃어버렸다. 미슐랭 맛집이었던 건담은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면 폐업하기 이르른다.
청춘의 성장소설이 아니라 노익장 과시하던 전설의 청요리 집 '건담'의 70세 노주사(老廚師 나이 든 화교 요리사), 두위광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는 김자령의 <건담 싸부>다.
20대 후반의 건담 직원, 본경과 나희와 함께 두위광은 변화를 꾀함으로써 전설을 다시 써나가는 이야기다. 마치 한 편의 중국의 무협 영화를 보듯, 주방의 고수들의 한 판 승부가 벌어진다. 곳곳에 등장하는 음식에 깃든 요리 철학이 재미를 더하는 소설이다.
'짜장면은 향으로 먹고, 색으로 먹고, 맛으로 먹고, 후루룩 소리 맛에 깜장을 묻히고 그 깜장 묻은 상대를 보는 재미로 먹는다. (p. 147)'
개인의 삶 그리고 기업, 작게는 노포에도 철학이 있다. 그 철학은 개인의 퍼스낼리티이고 기업과 가게에는 전통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고집과 관성으로 해석될 때는 변화의 대상으로 변한다. "천러얼츠, 천러얼츠"를 말하는 두위광의 요리 철학과 요리사의 마음은? 변화의 대상이어야만 할까?
내가 다녔던 직장인 테마파크에도 오픈할 때부터 가져온 철학, Spirit이 있었다. 내가 직장을 다닐 때만큼이라도 이 Spirit은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오픈 당시 그 Spirit을 지녔던 이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새로운 직원들로 채워지고 경영진마저 타 계열사에서 오면서 내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Spirit은 변화의 대상이 돼버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나 마나 한 말로 간단히 답하면 된다. '버릴 것을 버리고 바꿀 것은 바꾸면 되지 않나?' 쉽지 않다.
두위광은 본경과 나희의 도움으로 향과 맛을 찾고 변화를 택한다.
''변해야 산다!' 위광은 쓴 약을 삼키며 했던 다짐을 떠올렸다.
'바꿔보자. 모든 것을 바꿔보자. 가지 않던 길, 가본 적이 없던 길을 가보는 것이다. 머리에 피가 고여 있었듯, 평생을 주방 안에 머물러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 세상을 보자.' (p. 310)'
두위광의 요리 철학도...
'"재미났다." 위광의 첫마디였다. 요리로 맛과 감동을 주겠다는 위광과 본경의 요리 철학이 그렇게 첫걸음을 뗐다. (p. 419)'
두위광은 생각했다. 변화를 택해 무엇을 얻을지.
'그러나 나는 모른다. 변화해 본 적이 없으니 알 턱이 없다. 이렇다 할 정답을 말해주는 이도 없으니 변화해 봐야 알 일. 그 길을 한번 가보기로 하자. 그러나 이제는 안다. 변화는 기회를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p. 425)'
나도 생각해 본다. 지키려고 한 내가 맞는 건지... 그들이 맞는 건지... 그때그때 다른가? 에고 또 하나 마나 한 말로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