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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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 이야기, 이민진 장편소설 <파친코>가 판권 계약 종료로 절판되었다가 새로운 번역가의 작품으로 인플루엔셜에서 다시 출간했다. 몇 년 전 널리 읽힐 때 내용만 대충 알뿐 읽지 못해 아쉬웠었는데 인플루엔셜을 통해 <파친코 1>을 읽는 기회가 내게도 생겼다.


'한국인 이야기를 쓰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 그 질문에 대체로 나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한국인 이야기를 쓴다고. (...) 내게 한국인은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깊이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가치가 있는 이들이다. (p. 7)'

이민진은 한국인이 매력 있고 주인공이 될 가치가 있다고 한국 독자들에게 말하며, 놀라운 상황을 견디며 분투한 한국인을 강조했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p. 15, 첫 문장)'
나라도 잃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지도자들도 이념에 심취한 국민들을 이용만 할 뿐 우리를 저버렸지만 상관없다.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할 뿐이다.

'훈이는 새 소식을 가져오는 남자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단호히 숨을 내쉬고는 벌떡 일어나서 일을 했다. “상관없다.” 훈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상관없어.” 중국이 항복하든 대갚음하든, 채소밭에서 잡초를 뽑아야 했고 식구들이 신발을 신고 다니려면 짚신을 삼아야 했고 몇 마리 안 되는 닭을 훔치려고 하는 도둑들을 쫓아야 했다. (p. 30)'


부산 영도에서 하숙을 치는 어부와 그의 아내는 아들 셋을 낳았지만 윗입술이 세로로 갈라지고 한쪽 발이 뒤틀린 큰아들 훈이만 살아남았다. 훈이가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 조선은 일본에 통치권을 빼앗겼다. 스물여덟 살 훈이는 가난한 집의 딸 넷 중 막내인 열다섯 살 양진과 혼인한다. 양진은 네 번째 아이이자 유일한 딸인 선자를 낳았다. 딸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자식을 웃게 하는 것이 삶의 목표인 선자의 아버지 훈이는 선자가 열세 살이던 겨울, 결핵으로 죽는다.

어머니 양진과 하숙집을 운영하며 살아가던 선자가 열여섯 살 때 일본인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이를 도와준, 어머니 양진 또래의 서른여섯 살 고한수를 만나 사랑에 빠져 한수의 아이를 갖는다. 오사카에 한수의 아내와 세 딸이 있음을 알게 된 선자는 한수의 첩이 되기를 거절한다.

그해 11월 평양에서 백이삭이라는 목사가 오사카에 사는 형 요셉의 집에 가기 위해 요셉이 알려진 양진의 하숙집을 방문한다. 다시 찾아온 결핵에 양진과 선자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죽을 고비를 넘김 이삭은 선자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로 하고 선자와 오사카로 떠난다.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좋은 쓰임새가 없다면 삶이란 아무 의미가 없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p. 128)'

이삭의 형, 요셉과 그의 아내 경희는 오사카에 온 선자를 진심으로 맞이하고 선자가 낳은 아이 노아도 친 자식처럼 사랑을 준다.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중에 이삭은 신사참배 거부로 감옥에 갇히고 죽음 직전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두 아이를 보지만 끝내 죽고 만다.

'선자는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여전히 눈앞에 한수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서 빤히 쳐다보았다. 12년이 흘렀다. 그때와 똑같은 얼굴이 여기 있었다. 자신이 몹시 사랑했던 그 얼굴이었다. 선자는 밝은 달빛과 차갑고 푸른 바닷물을 사랑했듯이 한수의 얼굴을 사랑했다. 한수가 맞은편에 앉아 있었고, 선자의 눈길에 다정한 눈빛으로 응했다. 하지만 한수는 여전히 침착했고 신중하게 내뱉은 모든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한수는 언제나처럼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한수는 선자 아버지나 이삭, 요셉과 창호와도 달랐다. 한수는 선자가 아는 다른 어떤 남자와도 달랐다. (p. 314)'

어느 날 힘겹게 살아가는 선자 앞에 12년 만에 한수가 나타난다. 고비 때마다 한수는 선자와 아이들, 요셉과 경희를 도와준다. 일자리도 찾아주고, 폭격을 피해 오사카 외곽에 거처를 마련해 주고, 선자의 어머니 양진을 부산에 찾아 선자에게 데려오고, 나가사키에서 폭격에 심하게 상처 입은 요셉을 찾아오기도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오사카에 다시 돌아온다. 선자의 큰 아들 노아는 와세다 대학 입학을 위해 공부하고 둘째 아들 모자수는 조선인이라는 차별에 힘들어하며 1권은 마무리된다.

1권이 선자를 큰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됐다면 2권은 선자의 두 아이 노아와 모자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질듯하다. 아직은 왜 소설의 제목이 파친코인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2권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겠지.


일제강점기, 전쟁, 가난이 세트로 마련된 무대에 내던져진 삶이다. 역사마저 저버린 무대에서 대를 이어 살아가야 하는 엄혹한 환경이다. 견디며 사는 방법은 채소밭에 잡초를 뽑듯 닥치는 대로 일하고, 가족이 신을 짚신을 삼듯 내 가족을 지켜야 하고, 내 가족을 넘보는 도둑을 쫓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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