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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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맛있게 먹는 한 끼 식사가 만들어내는 행복감이야말로 삶의 원천이며, 진정한 밥도둑은 역시 약간의 모자람과,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는 맛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p. 8)'

<황석영의 밥도둑> 우리 문학의 거장 황석영이 음식을 글감으로 차린 소박한 자전 밥상이다. 음식은 먹을 때 같이했던 이와의 관계이며, 그 시절에 얽힌 기억을 불러내는 촉매이다.

군 시절과 선생이 시국사범으로 감옥살이할 때 먹곤 하셨던 음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열악한 교도소에서 여러 음식을 해 먹는다. 특히 요구르트와 빵으로 곰팡이를 피워 밀주를 만들어 마시는 에피소드는 기가 찰뿐이다.

전쟁으로 광명에서 피난시절, 첫사랑 어린 소녀가 "수남아, 너만 먹어!"라는 말과 함께 건네준 건 방금 솥에서 긁어낸 겉바속촉의 누룽지였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님이 몇 번이나 찾으셨던 고향의 음식 노티, 북한에 방문했을 때 어머님의 이산가족 동생인 이모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노티를 만들어 순안비행장에서 헤어지는 전에 푸른색 보퉁이에 담아 내미신다. 노티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입맛은 고향의 향수였던 셈이다.

뜻하지 않은 유럽 망명 생활에서는 지중해, 독일 등에서 음식을 접하면서 유럽에서의 추억과 그 추억에 깃든 음식의 레시피에도 전문가 수준이다.

고등학생 시절 출가 후 절에서 신세 진 고된 이야기. 전국 각지 산지 특유의 그 고장 음식이야기 끝에 들려주는 강진에서의 아욱된장국 이야기, 친구가 먹기를 원했던 아욱된장국을 같이 즐기지 못했던 아쉬움은 그 친구가 세상을 먼저 떠났기에 더하다. 그 친구를 떠나보낸 후로 그와 즐겼던 음식의 맛도 잃었기에 때문에...


황석영은 <황석영의 밥도둑>에 소개된 음식의 레시피를 꼬박꼬박 일러준다. 그 레시피를 읽다 보면 음식을 해보려는 욕심도 생기고, 음식을 만들 줄 알긴 한 건가? 또는 진짜 맛이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의구심도 들고, 음식 냄새를 맡는 착각도 든다.

'서울에서 반도의 서쪽 끝자락인 전라도까지 천릿길이라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보릿국'이다. (...) 새봄이 되어 햇볕이 포근해지고 아직 잔설이 덜 녹아서 밭두렁이 희끗희끗할 무렵이면 눈밭 사이로 파란 보리 싹이 고개를 비죽 내민다. 바로 이때에 보리 싹을 잘라다가 국을 끓이는 것이다. 먼저 쌀뜨물을 받아두고 다시를 내든지 아니면 '홍어애'를 넣어 국물의 맛을 깊게 한다. 보리 싹은 된장으로 살살 버무려 두었다가 넣고 끓인다. 한술 떠 넣으면 봄의 생명력이 싱싱하게 들어 있을 보리 싹과 구수한 된장과 홍어애의 콤콤한 맛이 어우러져 전라도의 땅 내음이 입안 가득 맴도는 것 같다. (p. 217)'

게다가 자신만의 비법도 소개한다. 이런 식이다.

'쌀과 버터, 파르메산 치즈와 달걀만 가지고도 맛있는 초 간단 리소토를 만들어 먹을 수가 있다. 쌀을 소금 친 넉넉한 양의 물에 삶듯이 익힌다. 익힌 쌀을 체에 걸러 물을 따라내고 접시에 담아 뜨거운 상태에서 버터와 달걀노른자를 얹어 파르메산 치즈를 뿌려 살살 섞어서 먹는다. (p. 173)'

이런 걸 보면 음식을 만들어본 솜씨이긴 한 것 같다.


<황석영의 밥도둑>에서 풀어내는 황석영의 맛깔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선생의 곡진한 삶을 느낌과 동시에 나의 추억도 저절로 떠오른다. 내가 먹어본 음식과 함께 마치 과거가 깨어나는 느낌이다. 어느새 가물가물해진 기억들이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며 선명해진다. 그래서 피식 웃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한동안 멍하니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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